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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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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상: 가슴이 웅장했던 곡소리

by 전설s 2022.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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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상: 가슴이 웅장했던 곡소리]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출처:pixabay)


집안 어른의 부고를 받고 엄마를 따라나섰다. 꽤 나이를 먹을 때까지 집안일에 곧잘 참석을 하는 순한 멤버였다.

= 호상이다 호상
= 올해 몇이시고?
= 105살
= 호상맞네 호상 맞네

아이고 곡을 하면서 들어오던 문상객들이 망자의 나이를 듣고는 울음을 뚝 그치고 호상을 외친다. 최근까지도 호상이라 함은 나이 80 정도는 넘은 분이 돌아가시면 호상이라 하나보다 라고 짐작만 했다. 오늘 이 글을 적으려고 사전을 찾아보니

호상: 복을 누리면서 병치레 없이 오래 산 사람의 상사

오래 산 것은 맞는데 큰 병치레없이 자연사한 경우라는 것은 간과하였다. 그런 점에서 할머니는 과연 호상이었다. 구청에서 호구 조사를 오면 늘 주민등록 앞자리를 잘못 적었다고 확인을 자주 받았다고 했다. 100살이 넘고 나서는.

아버지는 6남 2녀의 막내
어머니는 5남 2녀의 여자 막내 (막내 삼촌이 1명 있음).

양쪽 집안의 막내 두 분이 결혼했고 내가 막내로 태어났다. 그래서 수많은 장례식과 수많은 결혼식에 참석한 경험과 기억이 있다. 집안일에 참가하기를 싫어하지 않았고 바쁜 엄마를 대신할 때도 있었고 오빠들이 고향에 없으니 그들을 대신해서 가족 대표로 가기도 하고. 다들 아파서 돌아가신 경우가 대분분이었다. 어린 기억에도.

그런데 정말 이 할머니는 호상이었던 것 같다. 105세인가 106세에 자연사하셨으니.

그때는 다 집에서 장례를 준비했는데 빈소도 당연히 집안 어딘가였다. 사람들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곡을 하기 시작해서 망자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상주와 인사할 때 곡을 멈추었다. 어린 마음에 우는 소리만 내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어른들이 참 당황스러웠지만 호상이라서 그런가 했다.

조문뿐만 아니라 장례식에도 많이 참여를 했었는데 이 할머니의 장례식은 머리에 또렷이 남아있는 이유가 있다.

마당 가득히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때처럼 줄지어 섰다. 어쩌고저쩌고 발인식 절차가 진행이 되었는데 그것은 기억이 안 나고 단 하나. 사회자가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하는 순간.

모든 사람의 목에서 쏟아져 나와 무반주 합창이 되어 퍼져 나가는 그 곡소리의 장엄함에 전율이 왔다. 망자를 보내는 이런 아름다운 음악이라니.

이승과 저승의 길을 인도하는 것처럼.
이승과 저승을 분리하는 것처럼.
처연하고 엄숙하게 그 곡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망자에 대한 존경이랄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종의 느낌이랄까.
헤어지는 준비라고 할까.

그때 삶의 엄숙함이 밀려왔다. 죽은 자를 보내는 그 속이 흘러 퍼지는 그 순간에.

그 때 당시만 해도 화장된 뼈는 저렇게 호수나 강 그리고 바다에 뿌려졌다. 우리 선친은 자신이 뛰놀던 고향에.(출처:pixabay)

곰곰 생각해보니 이 비슷한 느낌을 한번 한 듯하다, 바로 선친의 장례식. 중학교 1학년.

화장터에서 관이 화장되기 위해 들여보내기 직전에 어른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마지막 인사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하는 순간 오빠들과 참석자들이 곡을 하고 있다. 나는 정말 곡을 하고 싶지가 않았고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아 무덤덤했는데, 곡을 따라 하다 보니 죽음의 실감이 오는 것이었다.

그때는 어렸고, 이 호상 때는 철이 들었으니 이 날 곡소리가 장엄하게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는 우리의 인사와 소리의 호위를 받으면 저승으로 잘 가셨을 게다.

오늘 동기 모임방에서 사고사인 죽음에 임하는 대한민국과 캐나다의 차이점을 논하다가 문득 영혼이 공감하던 곡소리가 떠올라 그 할머니와 선친의 장례식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보았다.

과연 사즉생이고 생즉사일까.

전설/개인사/단톡방/장례식/곡소리/이별인사/무반주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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