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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학생회장 직접선거

by 전설s 2021.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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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학생회장 직접선거]

(출처:pixabay)

학생회장 선거에 함 안 나가볼래?

예에!!!???!!

전교생이 투표로 뽑기로 했다.

(스치는 불길함을 안고) 어데예. 저는...

(나의 주저함을 용기 부족으로 판단한 담임) 한번 해 봐! 좋은 경험이 될거야.

(쭈삣쭈삣한 나) 아니 저는....

 

이제사 밝히지만 나는 당선 확률이 높을 것을 감지했는데, 당선 후 그 뒷감당에 대한 판단에 서질 않았던 것이다. 

 

초등학교 6년 그리고 중학교2년을 겪고 3학년이 되었을 때, 그 전에 벌써 안 것은 이런 지도부에 속하는 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삐딱하게 말하면 "촌지"가 오고가야 하고, 건강하게 말하면 "학교발전기금"을 척 내놓을 수 있는 부모가 뒷배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새 학기가 되면 늘 조마조마했다. 학급 임원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더구나 전체 학생회 임원은 더더욱 되지 않아야 하는데.

 

인생은 그렇게 풀리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두 군데를 회상해보면 루트가 유사하다. 

 

1학년 때는 담임이 학습(학예)부장으로 임명을 했다. 입학 성적이 좋았을까?

2학년 때는 담임이 지도(선도)부장으로 임명을 했다. 그러면서 전교 학생회의 전교지도부차장에 천거되었다. 부장은 3학년이 맡는다. 중고등학교 모두 그랬다. 

3학년 때는 중학교에서는 학생장을, 고등학교에서는 부학생장을 했다. 

 

참 신기했다. 조마조마 임원이 되지 않기를 기원해도 담임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쩝.

 

원래 신명이 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2학년이 되어서 전교 지도부차장이 된 나는 1학년 후배들의 아침 자습시간에 온 교실을 돌아다녔다.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너무 시끄러운지. 그러다가 어느 반에서는 말을 걸기도 하고,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그런 게 재미있었다. 그러니 1학년 후배 전부가 나를 알게 되었다. 

 

내가 3학년이면 1학년 후배들은 2학년이 되었고, 이 상태에서 직접 선거를 하면 내가 당선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후보가 4명 정도는 될 터인데 (경험을 주기 위해서라도 후보는 많을수록 좋은 것) 나눠 먹기만 해도 당선은 뻔한 것이어서 발을 빼는데,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줄로 알고 담임은 경험 삼아해 보라는 것이다. 

 

오 마이 갓. 

오 노.

빼다가 빼다가 담임에게 저런 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고, 당선이 안될 수도 있으니 해보자. 이렇게 시작된 것. 

 

그래 경험. 함 해보자. 

선거 포스터를 만들고 ㅋㅋ. 기억이 새롭구나. 공약 발표도 하고. 

 

덜컥 당선이 되고 말았다. 우리 반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당선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고마웠다 친구들.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출처:pixabay)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었다. 1학년 교실을 누비던 그때엔 직접선거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아마도 교장선생님의 부임 전이었을 것 같은데. 그것이 다 선거운동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후배들의 열화가 같은 성원을 잊을 수가 없다. 동년배나 우리 반 친구들보다 더 열렬히 응원해주었고 한 표를 주었었다. 나만 기억하는 것이다. 나의 일이니. 

 

학급 반장도 선출하였고 이는 학생회장과 겸임이 가능했다. 고등학교 때는 겸임이 불가능하여 반장을 하지 않고 부학생회장을 했지만. 물론 나의 선택은 아니다. 선생님들이...

 

중3짜리가 뭘 슬로건으로 내세웠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나 그 시절에 직접 선거를 경험하게 결정한 교장선생님의 결정은 센세이셔널한 것이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연습을 하고 있는 듯했지만, 소위 말하는 대통령 직접선거도 대학시절에 이루어진 마당에 얼마나 획기적 경험이었겠는가. 

 

적다 보니 꽤 오래전 이야기이다. 

 

회사 동료의 딸내미 졸업을 보고, 졸업식에 대한 추억을 꺼내서 글을 한편 적고, 문득 직접선거를 경험하게 해 준 일이 생각나서 적어보았다. 

 

정여사가 학교에 와서 분명히 할 일이 있는데, 학교발전기금을 못내더라도, 식사를 대접하는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을 하지 못해서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형편이 안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형편이 되면 한끼 식사가 뭐라고. 우리 정여사는 그 여유와 시간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좀 미안한 일이었다. 소풍을 갈 때면 도시락도 엄마들이 준비하고 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해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학급에서도 저런 류의 일이 발생하면 부반장이나 다른 친구들이 척척 도맡아서 처리해 주었었다. 그대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친구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존중해주고, 친구들이 꺼려하는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미래만 보며 달려왔는데 글쓰는 작업을 통하여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나름 즐거움이 있구나. 소중한 기억도 있고. 고마웠던 친구들. 항상 격려해 주었던 선생님들. 과외도 받지않고 오로지 자신들이 가르친 것만으로 성적이 좋다며 선생으로서 긍지를 느낀다고 말해주던 선생님들. 다들 잘 계시죠. 다들 잘 있지. 친구들.

 

비공개구혼/전설/개인사/학생회장/직접 선거/투표/

출마연설하러 연단에 오를 때 메모지에 키워드만 적어 간 기억이 있다. 나는 그때부터 연설문을 좋아하지 않았나보다. 나 ㅇㅇ는........(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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