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매운 맛 본 적 있다! 조심해야지]
출근길에 방송을 듣는데 오늘의 주제는 향신료였다. 향신료의 종류부터 원산지 그리고 향신료의 사회학적 의미와 실제 사용 용도. 그리고 향신료가 본산지를 떠나 전 세계로 어떻게 이동되었는지. 향신료의 이동 역사가 어차피 세계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고 흥미진진하다.
매운맛의 에피소드를 듣고 무릎을 쳤다. 옛날 사건이 생각나서이다.
우리 가족은 큰 아들외에는 매운맛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매운맛은 김치를 먹을 때 말고는 맛볼 일이 없었다. 집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매운맛을 알아갔다. 회 먹을 때 간장에 쫑쫑 썬 고추의 첨가는 그 매운맛으로 음식의 풍미를 도왔다. 그래서 아하 생각보다 좋은 걸 하는 기억도 쌓여갔다.
어렸을 때 처음 맛보았던 매운 맛의 기억을 많이 그리고 오래 가져가는 듯하다. 그때 생긴 트라우마로 매운맛을 굳이 먹을 생각은 아니하면서도 세상에서 우리나라 고추가 제일 맵다는 인식을 확고하게 지니게 되었다. 간간이 고추장과 김치의 매운맛을 느낄 기회도 있으니 더하여.
그런데 방송에서, 우리나라에서 매운맛에 단련이 되었다는 자신감으로 어슬프게 외국에서 매운맛은 자신 있다고 했다가는
정말 매운 맛에 죽을 수도 있다
는 경험을 말하는 데, 나도 그 기억이 있다.
매운맛을 즐기지 않아서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진 않았으나 나름 자신만만하게 매운맛을 언급했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
외국에 머물 때 아랫집 친구들이 파티를 준비하는데 이 친구들이 음식을 더 맛나게 먹으려면 곁들이는 음식으로 양파 초절임이 있어야 한다면서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손도 못 대게 하는 것이 있었는데.... 자그마한 녹색 파프리카 같은.
손도 대지 말고 혹시 만졌거든 절대로 눈을 비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라색 양파를 채 썰고 자그마한 녹색 파프리카(남미 고추로 밝혀진/ 준비하던 한 친구가 아르헨티나 사람이었다)를 그릇에 담고 물과 강식초를 넣어서 만들었다고 기억한다. 음식 옆에 서너 개 입 맛 도울 요량으로 올리는 이 것.
덥석 양파 링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었다가 그야말로 매워서 죽는 줄 알았다. 콩알만하게 잘라서 먹어야 하는 것을 양파를 좋아하니 매운것을 얕보고 덥썩 먹었다가 눈물범벅 콧물 범벅이 되었다. 좀처럼 매운맛이 가시지 않았다. 얼음을 물고 있어도 쉬 가시지를 않았던 기억이 생생.
그러나 맛은 좋았다. 음식과 함께 먹으니 더더욱. 그래서 가끔 몇 개씩 얻어먹기는 했다. 그 친구들은 자주 만들었으니. 그날 이후로 어디 가서 우리나라 매운맛을 자랑하지 않는다.
두 번째의 매운맛의 경험은 우리나라에서였는데, 사실 우리 중에 가장 어린 직장 동료는 평소에도 매운맛을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는 날 점심을 주문하는데 짜장면을 먹기로 하였다. 불짜장이라는 것이 유행한다면서 그것을 먹자는 것이었다. 호기심 많고 궁금함이 많은 사람이라서 즉각 동의.
그날 그 어린 직장동료는 불짜장을 한 그릇 비웠고, 나의 불짜장을 맛본 서너 명은 그 자리에서 젓가락을 놓고 다들 찬물 마시러 갔다. 우리 사장은 당장 보통 짜장면을 다시 시키라고 했다. 식사도 해야 했고, 매운맛을 가시게 하려면 한 그릇쯤 먹어줘야 한다고. 식당에 물어보니 중국산 매운 고춧가루를 넣는다고 했다.
앞의 경험은 매웠으나 즐거웠고 뒤의 경험은 불쾌한 맛이었다. 같은 매운맛인데도 말이다. 너무 많이 짜장을 한 입 가득 넣어서였을까.
요즘은 그야말로 음식의 맛을 더 풍요롭게 하는 정도로만 매운맛을 즐기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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