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키보드와 마우스]
오늘 키보드와 마우스를 바꾸었다. 뭘 하나 장만하면 가능한 오래 사용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다지 나쁜 습관은 아니지만, 얼리어댑터의 기회는 줄어드는 게 확실하다. 구입은 하지 않더라도 새 기기에 스스로 노출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
아파트로 이사오고 나서 구입한 키보드와 마우스는 거의 20년에 육박한다. 중간에 한번 바뀐 지 기억이 가물하다. 컴퓨터 하드는 몇 차례 업그레이드를 했지만, 집의 컴퓨터로는 기본적인 일만 하기에 대단한 성능의 키보드와 마우스 사양이 요구되지 않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게임이라도 했거나, 물건에 싫증을 내는 성격이거나 새로운 것을 탐험하는 스타일이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원래 나는 공책에 가는 볼펜으로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씨체의 변형도 좋았고, 글을 적는 것 자체가 좋았고, 곱게 적힌 나의 글을 보는 재미가 참 좋았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일기가 컴퓨터로 옮겨가면서, 종이에 글을 쓸 일이 완전히 줄었다. 학생도 아니니 필기할 일이 생기겠는가. 그래서 매우 슬퍼했는데, 기사회생이 왔다. 저 위의 키보드가 그 열쇠였다. 키보드가 조용하지 않고, 초기의 자판이라 키보드를 칠 때마다 들리는 키보드의 소리가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것을 알았다.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키보드로도 수많은 날들의 일기를 적었다.
그래서 종이 글이 주는 행복을 이 키보드가 그 탁탁소리로 재생산해주어서 참 행복한 날들이었다. 새 키보드의 소리도 나름 좋다. 핸드폰은 조용하게 글을 적는데, 키보드는 늘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파이팅! 늘 너와 함께 하고 있는 내가 있어!!!"
엄마 같은 안정감을 주는 키보드 소리, 글 쓰는 그 자체.
좋은 습관이 있어서 정말 다행한 날들이었고, 그 중심에 키보드가 존재했다. 오늘 너를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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