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mercy 자스트 머시]
아마 영화 각본이 그랬을 것이다. 다른 영화에서는 그 죄수복이 아니었다. 흑인 차별을 다루는 영화에서 살인죄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가 희고도 흰 죄수복을 입고 있게 했다. 블랙의 얼굴과 화이트의 죄수복이 영화 보는 내내 거북함을 주었다. 각본은 컬러로 이미 보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적어도 나에게.
18세 백인 여학생을 죽였다는 혐의로, 흑인 가장은 누명을 쓴 채 사항언도를 받고 갇힌다.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젊은 변호인이 :정의:를 사수하는 원대한 꿈을 품고 이 사형수들을 방문한다. 그리고 이 죄수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영화의 주제다. 일련의 과정 그 자체가 결과만큼 앨라배마주의 백인과 흑인에게 경종을 울리기 때문이다. 실화이며, 이 그 이후로도 계속 억울한 수감자들을 위한 변호업무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 영화를 보는 자에겐,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여야 하고, 그것은 인간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대상임을 기억하게 한다.
다른 것도 살펴본다.
1. 앨라바마 인종차별
영화는 앨라바마를 배경으로 한다. 굳이 아니라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80년대 말과 90 년 대초의 미국 내 인종 차별은 만연했는데, 앨라바마는 특히 심했다. 면화 재배를 위한 노예제도가 광범위했던 지역이었다.
노예해방우 된 후에도, 백인들의 되리 속엔 여전히 각인되어 있는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바탕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슬프게도, 아니 기쁘게도 영화는 실화바탕이다. 마지막엔 그가 사형수에서 자유인 되었으므로.
2.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 명상과 상상
주인공 남자는 누명을 쓰고 사형을 받고 수감된다. 독실 좌우로 다른 사형수들이 있다. 언제 실행될지도 모르는 사형집행일을 가슴에 품고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한 남자에게 사형집행일이 확정 나자, 남자는 멘붕을 겪는다. 옆방의 주인공 남자는
눈을 감아라.
심호흡을 하라.
심호흡을 하라.
감방도 간수도 죄도 사형집행일도 머릿속의 모든 것을 두고,
단지 벌판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하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상상하라.
거기에 서 있는 자신만 상상하라.
거기서 신선한 공기를 마셔라.
생각 끊기를 도운다. 명상으로 안내한 것이다. 영화 작가는 명상을 해 본 시람이다. 여기서 생각 끊기를 사용할 줄이야.
그래서 문득,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 몇 개를 찾아서 상상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관리하고자...
3. 트라우마를 이용하는 자들
많은 경우, 아니 대부분의 경우, 죄수가 자신이 벌을 감형받는 것을 조건으로, 다른 범죄의 사실을 증언한다.
주인공을 사형수로 내 몬, 증언자는 고아로 자랐다.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키워졌는데, 7살에 화재가 나서 화상도 입고 죽을 뻔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검찰은 거짓 증언을 유도했지만, 원활하지 앉자 그를 사형수 감옥에, 사형집행실 가장 가까운 곳에 수용을 한다. 한 사형이 집행되고 타는 냄새를 피워... 그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죽음, 사형집행일, 화재의 타는 냄새... 그는 거짓 증언을 받아들이고 다른 감옥으로 이송된다.
비록 죄인이지만, 판단이 멀쩡했던 그는 트리우마에 굴복한다.
이런 이유로라도, 우리는 내 속의 트라우마를 찾고 직면하고 풀어야 더 제대로 살 수가 있다. 언제라도 당당하게.
4. 협박이 아니라 요청, 그리고 일말의 양심
변호인은, 증인의 거짓 증언 인정으로 재심을 청구하였으나, 기각당한다. 선서를 했음에도 첫 번째 증언을 거짓이라 하니, 선서를 한 두 번째 증인도 사실이라 할 수 없다.
변호사는, 모든 증거가 사실이 아니니 기각 요청을 신청하는데, 담당 검사는 재판연기를 신청한다. 사건 재구성의 시간을 벌고자.
검사를 찾아간 변호인은, 검사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힘이 검사에게 있음을 말하려 왔다며 그에게 오히려 함께 참여를 호소한다.
또한, 심사 당이, 변호인은 법의 목적, 법이 해야 할 일,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할 법이 차별을 허용하게 말아달라. 법학과 1학년 교과서와 헌법에나 나올 법의 기초적 원직을 호소한다.
검사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던 터라, 갑자기 검사는 갇혔던 세상에서 문을 열고 나와, 이 운동에 동참하고 만다. 할렐루야!!!
늘 원칙과 상식이 성립하면 좋겠다.
5. 그들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것: 내 마음의 진실이 주는 평화, 가족의 지지
재심 불가 판정이 나자, 변호사와 가족을 포함한 모두가 실망한다. 그러나 단 한 시람, 사형수는 기뻐서 운다.
자신이 결백하지만,
경찰 검찰 여론
등이 범죄인으로 몰아가면 나 자신도 헷갈리기도 하고, 또한 면회도 없어지는 가족들이나 지인들마저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면.
절망이 오는데,
재심은 기각되었지만, 가족과 지인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은 누명을 쓴 채로 죽어도 , 이미 감사하다는 것.
자기 자신이 파악하는 자신과 가족들과 지인이 파악하는 자신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이미.
모두가
네가 범인이다.
라고 가스라이팅을 하면, 혼돈의 상태가 온다는 것을.... 그 위기를 벗어난 것이 최고의 평화. 재심은 기각되었으나...
6. 가난의 반대는 정의. 가난은 불공정의 다른 표현이다.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인종차별만 없어도.
법만 제대로 집행이 되어도.
부자를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다. 가난해도 좋으니, 법 집행을 공정하게 해 달라. 가난의 반대는 정의다. 가난은 불공정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냥 변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희망을 가지고 작은 일을 행하면 어느 날 태산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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