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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SERENDIPITY/DRAMAS & films

억울해서 어찌 사나: 레블 리지, 일상에서의 영웅

by 전설s 2024.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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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해서 어찌 사나: 레블 리지, 일상에서의 영웅]



영화 시작, 평범한 시민의 자전거 이동


영화 레블 리지는 2024년 작품이다 많은 영화에서 그리고 뉴스에서 미국 사회에서의 인종 차별을 보았다.


흑인을 노예로 부린 역사는 18세기 미국 건국이전부터라도 몇 백 년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은 남북전쟁이 거의 노예해방전쟁과 다름없었는데, 흑인에 대한 이 지독한 인종 차별은 도대체 뭘까?


어이없는 인종 차별 내용이 부담스럽지만, 이 영화는 시작부터가 "무차별 고의적 차별" 부당함으로부터 시작된다.


멀쩡하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흑인 시민을 세우는 경찰차. 이어폰을 사용하던 그는 소리를 못 듣고 한참을 달려왔다. 경찰은 도망이라 판단하고 그를 제압한다.



자전거는 쓰러지고, 경찰은 굴욕적으로 땅바닥에 엎드리는 자세로 그를 제압하다. 총을 소지할 수 있는 미국이라는 사회라서 그런지 이런 굴욕적 제압을 한 두 번 본 게 아니다. 다만 백인에겐 덜하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그래도 그는 침착하게 경찰들을 응대한다. 그는 해병대에서 근거리 공격과 수비를 교육하던 교관 출신이다. 상대방의 심리,  움직임을 읽는 능력이 탁월하고, 주짓수의 강자다.




경찰은 그 지역의  불량배와 불량배 유사인들의 가벼운 범행을 유도하거나 짜깁기 해서 구금을 하고, 터무니없는 비싼 보석금을 매겨서, 그 보석금으로 경찰서를 꾸려 나가는 부패한 경찰이다. 판사와 결탁해서 심지어 90일간 보존해야 하는 현장 cctv가 제거되는 시점에 이송을 한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치밀하다.


이 건강한 정신과 몸놀림의 소유자인 흑인 시민은,  정의가 가슴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지만 숨어있는 자들의 도움을 받고, 그 자신의 탁월함으로 그들의 부패구조를 파헤친다.


영화는 여러 가지로 볼만하다. 정의는 희생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건강한 시민과, 소심한 시민들의 희생의 합작으로 탄생한다. 소심한 샤이 시민들은 영웅/리더가 있을 때 빛난다. 그러나 리더가 엉망일 때, 영원히 어둠으로 숨는다. 눈을 감으면 일상이 조용한데, 그 일상의 중요한 시간과 자원의 희생을 감당하면서도 그들은 정의로 다가선다.


우리 일상 속의 이 소중한 영웅, 숨은 샤이 정의꾼들. 이 흑인 시민이 차별이 난무한 상황 속에서 그들 속에서 정의를 이끌어낸다. 경찰과 조폭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세상의 진리도 드러나게 한다.


선을 위하여 악을 이용한다는 경찰들의 변명은 의미가 무겁다. 부패한 경찰이 아니라, 깨끗한 경찰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의미가 더 무겁다. 판단하고 숙고해야 할 철학적, 사회직, 국가적 과제가 숨어있다.


영화도 슬프게도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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