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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즐기는 사람(여자)이 되기까지

by 전설s 2024.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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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즐기는 사람(여자)이 되기까지]

 


 
이제는 공공연히 추석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명절 증후군이 있을 정도로 명절은 여성들에게 부담스러운 시간들이다. 우리 집은 단출하다. 제사는 선친기제사만 있었고, 설날과 명절은 남들처럼 차례를 지냈다. 다른 집은 조부모 부모만 해도 벌써 4회의 기제사에 설날 명절이면 10회의 제사 준비를 하게 된다. 최대한 그렇다. 어쩌다가 결혼 안 하고 사망한 형제자매가 있거나 삼촌과 큰아버지라도 있을라치면 더하다. 예전엔 다 챙겼으니, 며느리들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장손의 집은 최대한 6번, 일반가정은 부모 생존하시면 없거나, 혹은 3회 내지 4회 제사 준비를 하게 된다. 물론 설날 추석 포함해서이다. 우리 집은 선친 기제사와 추석 설날로 연 3회로 발생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정이 있는 사람들은 덜하다. 또한 부모와도 정이 깊었던 사람들은 제사 준비가 덜 힘들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러하더라고 육체적으로는 힘든 일이 틀림없다. 
 




 
우리는 선친 기제사 하나뿐이었어도, 가족 수가 늘어나자 쉽지는 않았다. 더구나 가족들이 같은 도시에 살지 않아서 2박 3일 내지 1박 2일 함께 머물렀다. 주로 2박 3일이었다. 2박 3일간 10인의 가족이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다. 시장보기부터가 힘들다. 택배가 되지 않던 시절은 더 힘들었고, 택배가 되는 물건이 있어도 재래시장에서 사야 하는 물건이 또 있다. 음식 재료, 음식 준비, 차려내기, 설거지 하기 같은 육체적 노동 말고도 , 좁은 공간에서 잘 수 있는 공간 확보, 잘 수 있는 침구류 등등 신경 쓸 일이 많다. 
 
 
넓은 집으로 이사를 오니, 공간이 넉넉한 것이 벌써 위로가 되었었다. 


힘들었지만, 명절의 2박 3일은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같은 도시 사람들이 아니라서 자주 볼 수 없다. 그런데 설날과 추석에는 가족 중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긴 세월을 그들은 엄마가 계시는 좁은 공간으로 오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명절 차표 예매에도 도가 트여서 자리 확보도 잘하고.
 




 
그렇게 2박 3일을, 우리 집 차례, 큰 집 차례를 참여를 했다. 큰 집 차례는 2, 30명씩 모여서 지냈었는데, 수 백 년을 하던 일을 코로나가 정지시켰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 전체 차례를 생략하였다. 잘했지만 사라진 전통이 아깝고 아쉽다.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2박 3일간 연 2차례 우리는 가족의 기분을 느꼈다. 참 좋은 시간들이었다. 온 가족들이 모여서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은 연 2회에 불과하지만 오랜 세월 쌓이면 그것에도 의미가 있다. 물론 같은 도시에 사는 우리 정여사와 나 이외의 사람들은 생일에도 모였지만 그것은 생일 저녁에 같은 도시인들끼리의 향연이었고... 기제사엔 각 가정의 대표들만 참석하게 했다. 우리 정여사가 다른 도시의 며느리들과 손주들이 기제사까지 오지 않게 처음부터 못을 박으셨다.  먼 거리라.
 
 
추석과 설날 차례는 처음에는 우리 정여사 혼자서, 나는 주로 돕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힘이 부치기 시작할 때는 재래시장의 포터로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목록만 주시면 혼자 장을 보러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목록까지도 스스로 작성해서 우리의 명절 준비가 시작되었다. 우리 정여사가 직접 음식을 할 수 없는 시기부터는 아바타 역할을 했다. 지시하는 대로, 일일이 물어서 준비를 했다. 의식이 멀쩡하시니 아바타 역할만 해도 제사 음식이 만들어졌었다. 올케들은 다 끝나고 나면 도착했지만, 집이 머니 어쩌랴. 아이들이 생기기 전과 어릴 때는 일찍 와서 음식을 같이 했는데,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자 늦게 도착했고, 나중에는 그들도 나이가 들어서 굳이 맡기고 싶지 않았다. 몇 시간 차를 타고 와서 음식까지 해야겠는가. 온 것이 더 소중했다. 
 




 
그러니 일은 우리 정여사 결국에는 다 나의 몫이었지만, 할 만했다. 가족들을 만나는 시간이라 희생과 수고는 할 만한 가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니면 내 성격에 불가능한 일이다. 좁은 공간에 잠자리를 마련하느라 그것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일보다 더 난감했었다. 지금처럼 집이 넓었으면 명절이 더 신났을 것인데. 제사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좁은 공간에서는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었다는 기억을 한다. 
 
 
다 옛 일이 되었다. 


집도 넓고, 2박 3일 간 먹을 다량의 음식을 넣을 냉장고 마련되고, 준비는 더 완벽한데, 세월이 흘렀다. 등장인물이 2명 더 하늘나라로 갔다.


정여사 사후에 기제사와 명절 차례가 장소에서 장손주에게로 이전되었다. 하여, 추석을 즐기는 사람(여자)이 되었다. 명절이 되어, 재래시장의 북적임을 구경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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