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드라마 돌풍]
드라마 돌풍에 대한 말들이 남아서 미루다가 미루다가 슬쩍 본다. 굳이 행복할 것 같지 않는 드라마를 봐야 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이 작가의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속도감 있는 전개에 설명을 하는 듯 안 하는 듯 도약이 난무했는데, "돌풍"에서도 그런 흔적이 있다. 그 작가의 앞 선 내가 본 드라마는 검찰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펀치:이다. 여기서도 주인공은 죽음을 무기로 사용한다. 뇌종양으로 죽음을 선고받은 한 검사가 과감한 활동을 보인다. 이 드라마에서 실제이건 가상이건 검찰의 실체를 감을 잡게 되었다.
"돌풍"도 "펀치"처럼 소위 말하는 "정치하는 진보"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그 간 사극이 많았고, 보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현대물이 많았었다. 진보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돌풍"이 처음 아닐까. 물론 "지정 생존자"나 "보좌관'등의 드라마로 살짝 맛보기는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와 함께 나란히 부패 속으로 동행을 시도하고 있는 2024년의 상황에서는 "돌풍"이 더 실감 난다고 해야겠다.
현실정치에 발을 담그려 한 적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담그지 못한 시선으로 드라마를 한 번 감상해 볼까 한다.
진보에 대한 이해는 두 파트로 나뉜다. 이 드라마가 나오기 전과 후!!!!. 상상을 영상으로 보여주었으니 상상은 강화된다. 상상이 사실이 아니어도 각인된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정치의 프레임을 구경하게 된다.
1. 모순 덩어리 인간
2. 권력에 활용당한 가치
3. 권력을 이용하는 생존
4. 권력의 배분을 잘하기 위한 철학을 정착한 리더
5. 권력을 힘의 배분이라 했거늘
6. 가치는 감옥 밖에서도 살 수 있는가
이런 순으로 감상해 보기로 하자.
1. 모순 덩어리 인간
돌풍은 작가는 굳이 표현한 적이 없지만, 진보진영을 다룬다. 그간에 권력을 쥐고 있던 보수 정치 영역에서 저런 거래가 있을 것이라 예상되고 실제로 그러했던 부패와 비리의 고리들이 가감 없이 전개된다. 보수는 부패하더라도 진보는 그렇지 않으리라 기대하였으나, 진보도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보수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진보의 가치를 내 세우고 보수에 반하여 저항할 때는 진보도 가치가 우선이었으나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그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기 위해서 행하는 음지의 거래에 있어서는 보수도 진보도 똑같은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보수와 진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속성이 그런 것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 인간 안에서 보수와 진보는 충돌하다가 권력 앞에 나란히 무릎 끓는다. 그들이 하면 불륜이고 우리가 하면 로맨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치의 차이도 없는 "불편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용서받지 않아야 할 사랑이었던 것이다.
2. 권력에 활용당한 가치
진보는 명실 공히 가치가 최우선이어야 했다. 보수가 고정되게 추구하는 것들에 대하여, 국민 전체의 이익과 인간성 존중을 위하여 개선을 촉구하는 가치 중심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진보의 본분이다. 권력 앞에서는, 진보 진영에서 고고하였던 그들조차도 권력쟁취나 권력 유지를 위하여 방편으로 삼은 도구들이 보수진영이 사용하는 수법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진보의 가치는 권력을 가지고 유지하려는 자들에 의하여 철저하게 유린된다. 그냥 진보가 추구하던 가치는 진보진영에 의하여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한다.
3. 권력을 이용하는 생존
진보보다 먼저 권력을 잡은 보수 진영은 생존이 모든 가치의 우위에 선다. 생존을 대변하는 것이 재화 즉 돈이다. 보수진영은 축재를 위하여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돈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것이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들이 비난을 특히 진보진영으로부터 비판과 비난을 받았던 것은, 돈이 비정상적으로 집중적으로 축재되는 것을 용인하였다는 것이고, 생성된 재화가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을 허락한 지점이었다. 또한 재화의 생산을 국익이나 국민 개개인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 봉사하게 한 것이 대단히 큰 문제였던 것이다. 보수는 권력을 사익의 생산과 축적에 집중하여 비판받았다. 드라마 돌풍에서는 진보진영도 권력을 쥐자 사익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진보가 변했을까? 진보가 보수가 된 것일까? 진보도 세월이 흐르면 기득권층이 되고 새로운 보수가 되지 않겠는가.
4. 권력의 얻고 지키고 활용하는 방법에 실패한 진보 정치인
진보도 이제 권력의 맛을 알았다. 기득권층 진보는 보수화 되었다. 진보나 보수의 가치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가 문제의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뒤늦게 우리는 알게 된다. 보수가 그랬던 것처럼, 진보도 자신들의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하면 "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권력을 유지하고 사용함에 있어서, 보수가 사용하는 방법과 차원이 다른 방법을 찾고 정리하고 실천을 해야 했는데, 그들은 여기서 실패를 한다. 보수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만 것이다. 냉정하고 냉철하게 그 분별을 하지 못함으로써 대한민국의 현대 정치는 망하고 말았다. 드라마에서도 그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참으로 아쉽다. 인간의 본성,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라고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운 점이다. 진보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공부하고 연구해 두지 않았던 것이다.
5. 권력은 힘의 배분이라 했거늘: 자신이 진보 가치 실현의 도구가 되기를 희망하였으나 권력의 노예가 된 진보 정치인
진보의 어느 대통령은 말했다. 권력을 정의하면, 이는 적절한 힘의 배분이다. 권력은 말 그대로 힘이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권력자/위정자/대통령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시대에 그 국민에게, 혹은 미래세대까지 포함해서 적절하고 유용하게 필요한 일을 위하여 국가의 힘을 잘 배분하는 역할을 하는 것. 권력이 그동안 사익에, 재벌에, 특정의 것에 한정되어 사용되는 바람에 국가 균형 발전을 저해하고 양극화는 심해져서 국민들 간에 조화가 부족하다. 보수는 대놓고 그 권력을 자기들에게 유용하게 자신들의 특정 목적에 맞게 사용한 반면에, 진보는 권력 자체를 유지하려다가 진보가치 자체를 잊었다. 양쪽 진영의 번지르르한 국민을 위한 말잔치 말고 실제 국민을 위하는 그런 정치적 이념을 진보도 잊은 것이었다. 가치실현을 위해 권력의 필요성을 알았다면, 권력의 노예가 아니라 권력의 주인이 되었어야 했다. 학생운동을 할 때는 진보의 소중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도구로 써 달라고 소망했던 그들이었으나, 권력을 쥐게 되자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쟁취하기 위해, 진보 가치를 철저하게 버린다. 삶에 용해되지 않는 가치가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반면교사인 보수가 가르치고 가르친 것이 그것이 아니었나? 말과 행동이 다른 정치.
6. 가치는 감옥 밖에서 살 수 있는가. 극단적이지 않으면 가치는 실현이 불가한가.
여자 주인공은 감옥에 들어가서야 젊었던 날의 자신을 회상한다. 대학 때 민주화운동 할 때 공안부에 잡혀가서 고문당하던 시절, 감옥에 돌아와서 벽에 새긴 글씨 "민주주의의 만세". 그 소녀가 자신을 보며 울고 있다. 정신병원엔 정신병원밖에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산다고 했다. 진보의 가치도 감옥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을 전제하고 미래를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과감해지고 평생 품어 온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일까. 죽음을 전제하지 않는 삶에서는 진정 안 되는 일인가. 극단적이지 않은 가운데 우리는 인류 모두에게,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를 현실 정치에 반영할 수는 없는 것일까.
'SERENDIPITY > DRAMAS & film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르마를 만났던 "바람의 검심" 시리즈 5편 (2) | 2024.07.28 |
---|---|
바람의 검심, 바람의 검심: 도쿄 대화재 & 전설의 최후 (0) | 2024.07.27 |
선산: 인생은 희비극적이라는 것을 깜빡했어 (0) | 2024.06.30 |
자유란 무엇입니까: 장야 시즌 1 (0) | 2024.06.26 |
영혼 신부: 말라카의 다문화 융합 엿보기 (0) | 2024.06.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