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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SERENDIPITY/DRAMAS & scenes

용서의 의미 forgiveness: 밀양

by 전설s 2021.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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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의미 forgiveness: 밀양]

삶에 대하여 회한이 많은 사람. 상처가 많은 사람. 고통이 깊은 사람.

 

사람들은 그들에게

이제 그만 잊어라 한다.

이제 그만 용서하라고 한다.

이제 그만 새 삶을 살아라고 한다.  

 

그 가해자를 이해하고 포용해주는 성인이 되라는 것인가. 아니라고 한다. 물론 이해를 하고 포용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게 있고, 그것이 용서라고 한다. 

 

용서를 한다는 것은 

 

고통을 주고 상처를 준 사람 혹은 사건에 대하여

나의 귀중한 에너지를 1도 할애하지 않는 것.

나의 아까운 시간을 1초도 사용하지 않는 것.

나의 마음에 상대/사건을 0.000001그램도 남겨두지 않는 것 

 

그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상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일 지도 모른다. 그 귀한 것들을 이제 오로지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용서 forgiveness라는 것은 let it go를 통해서 let me go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아닐까. 

 

영화 "밀양"에서는 아들을 납치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긴 시간을 들여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겨우 용서의 마음을 품게 된 그녀가, 용서를 하러 감옥에 있는 그 범인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범인을 용서하기는 커녕 오히려 상처만 입고 돌아온다. 그 범인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버린 것이었다. 죽은 아이와도 산 엄마와도 관련 없이. 

 

그러니 상처와 고통을 주는 사건은 발생과 동시에 내 손을 떠나는 것이다. 그들은 상처와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내 상처는 더 깊어진다. 그들이 와서 용서를 구한다 한들 상처와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통과 상처는 let it go. 그냥 흘러가게 손을 놓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도 한 발 전진하는 것이다. 

 

될까. 

그들은 와서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일상이라서 용서받아야 할 일이라는 것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사고 체계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잣대를 대면서 사과를 하라 한들 가능하겠는가. 

 

용서이면서 복수이고 복수이면서 용서인 것은 

바로 let it go.

 

고통과 상처를 받은 것도 이미 속상한데 끊임없이 내 시간과 삶을 갉아먹게 허용을 해야하는가. 이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가 더 소중하고 나의 삶이 더 가치롭다. 

 

선택의 시간이다. 

[let it go] lets you go.

 

  

 

오늘 태양은 또 떠오른다. 미래에 살자. let it go. 인도네시아 브로모에서 만난 일출. 

 

[플러스]

수십년을 수요집회를 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에게는 그런 점에서 큰 빚을 지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그 엄청난 일을 let it go하지 않고 "끝없이 기억하고 알리려 했다". 사회는 이런 큰 집을 진 자들의 수고에 힘입어 발전한다. 고인분들의 명복을 빈다. 살아계신 분들은 사과를 받고 보상도 받기를 기원한다.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들에게도 그것을 let it go하라고 할 수 없다. 위안부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진상규명도 피해자 위로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인 합의가 아주 원만하게 해결이 되고나서도 그들에게 남는 것은 "개인적인 트라우마"이다. 이 트라우마를 다시 정면으로 만났을 때 위의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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