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접란, 생각보다 오래 머무네]
화초는 절대로 나와 동행하기가 어려웠다. 정여사가 꽃나무 그리고 동물을 사랑해서 집에 들이어 놓으면 잘 지내다가 내 방에 오면 시드는 것을 많이 보아 온 터라 화초 선물을 받으면 늘 노심초사이다.
23년 4월 말에 조카가 정여사 방문 때 가져온 화초도 집에서 두어 달 만에 시들기에 회사로 자리를 옮겼더니 새로 살아났다.
23년 11월 초에 집으로 온 호접란. 나는 집으로 가져오고 싶지 않았다. 혼자 들 수도 옮기기도 난망한 사이즈가 한 이유였고, 또 다른 이유는 저토록 이쁘면 뭐 하나 집에 가면 또 시들시들할 텐데... 심리적 압박.
원래 잠시 피었다 가는 꽃이니 부담 없이 질 때까지만 보라고 한다. 그래서 왕조카가 번쩍 들어서 집에 모셔두고 갔다.
3개월 째인데, 내가 본 꽃 중에 가장 오래 내 곁에 머물고 있다. 우리 어머니, 정여사의 기운이 스며든 것일까. 장례 때 들어온 화분이었으니 비과학적 철학적 해석을 해 본다.
별로 해 주는 것도 없다. 호접란 아래 잎이 시들시들하면 화들짝 놀라서 입술 적실만큼의 물을 준다. 많이 주었더니 뒤에 배경으로 심어진 화초 잎이 여러 장 물러터져 녹았다. 성질이 다른 화초를 함께 심어 놓았을까? 분리하는 작업을 해야 할 듯한데 일단 미루고 입술 적실만큼만 공급한다. 장례식용이라 3일만 견디만 되니 그런 걸까? 하는 생각만.
나와 용케도 3개월을 견디고 있는 호접란. 중간 송이는 생명을 마감했다. 꽃은 낙화했고 줄기가 말라비틀어져 간다. 노리끼리하게.
오른쪽에서는 이제 꽃들이 한 송이씩 마르며 떨어진다. 떨어진 꽃을 모아 보았다. 투명 용기에 딱히 멋지진 않지만 건조되면 오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어도 이미 좋았다.
호접란이 생각보다 오래 머물고, 이제 드라이플라워로 탄생할까? 기대된다. 떨어지고 마르길 기다리는 내가 되다니. 그것도 화초를!!! 세상 참 모를 일!!!
'HERstory 우리 정여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 단장이 취미였던 정여사 (2) | 2024.02.24 |
---|---|
정여사가 살았던 방: 참 다행이야 (0) | 2024.01.17 |
정여사의 마지막 전화비 청구서 (2) | 2024.01.08 |
23년 동짓날의 추억 만들기 : 가신 지 49일째 (1) | 2023.12.22 |
수선 여왕 정여사: 수선 거리를 그대 품안에 (2) | 2023.12.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