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에 에어컨을 넣었어야 했지만 그다지 필요할 것 같지가 않아서 거실에만 에어컨을 허했다. 그러나 해마다 여름의 최고온도는 높아져만 간다. 4년 전까지만 해도 별일이 없었는데, 3년 전부터는 에어컨이 없는 삶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정여사. 늘 찬 바람이 싫다고 하던 정여사였다. 주무실 때 선풍기를 털어놓는 것을 허락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더위에 강했다.
그러나 세월은 더위와 함께 깊어간다. 지구 온난화는 여름을 이제 예전의 여름으로 기억하게 하지 않는다. 가뭄 장마도 있고, 여름 한 낮의 최고 온도는 어르신들의 몸을 망가지게 한다. 물론 뇌를 포함한다. 재작년 어느 여름, 아무리 생각해도 정여사의 뇌 회로가 평소 같지 않아서 분석과 고민을 거듭하다가 에어컨으로 거실 온도를 조정하여 더 이상의 진행을 저지하였다.
그래서 여름 더위가 시작되면, 열대야가 온다고 하면 이제 거실로 이사를 나오는데, 작년에는 그녀의 침대를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바로 밑에 배치를 하는 바람에 정여사가 한기를 느꼈다. 그렇다고 끌 수도 없는 상황이라 옷을 입히는 것으로 해결을 했는데, 올해는 침대를 ㅇ[어컨의 풍향 조절안에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배치를 하였다.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다른 가구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전설이 우왕좌왕 하고 있으니, 정여사가 조용히 말한다.
저 소파는 이 쪽으로. 그리고 이 방향으로. 화분들은 이 쪽 중앙. 선풍기는 멀리 저 쪽에....
그런데 정여사가 정해주는 위치와 방향으로 해 놓으면 이상하게 어울린다. 그래서 대충 정리를 하고 여쭈어 본다.
= 정여사님이 시키는 데로 하니까 편안하게 정리가 되네요. 어찌 이런 능력이 있을까요? 혹 공부를 하셨나?
= 내가 이런 감이 좀 있는 사람이야. 공부는 무슨... 세상 모든 일이 감이다.
= 아, 녜!!!!!
시원한 온도에서 그녀는 더 똑독해 졌다. 식단 조절로 더 똑똑해졌다. 척추와 갈비뼈 금 간 이후로 운동 부족으로 다리 근육이 많이 약화되어 있음에도 의지로 보행기 사용을 멈추지 않는다. 근육 사용이 줄어들게 되면 뇌 활동도 줄어들게 되는데, 그나마 잘 견디는 우리 정여사. 그녀의 86세 여름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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