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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HERstory 우리 정여사

가전제품이 정지가 되면 정여사의 하루는 엉망이된다

by 전설s 20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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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가 멀쩡하여 단골 가게에서 친구들과 만나서 놀던 그 시절에도 TV는 정여사의 친구였다. 친구들이랑 실컷 수다를 떨고 귀가를 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TV를 켜는 일이었다. 켜기만 하고 집중하지 않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 정여사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살던 집이 재개발 구역으로 되었다가 집을 짓기 시작하니 영원할 것 같았던 친구들이 자식들 집으로 들어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버리게 되니 친구가 몇 명 남지 않았다. 간간이 긴 전화로 만나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을 메꾸더니 뜸해지고 급기야는 비보도 날아든다.


그러다 보니 TV와 음악 듣기는 정여사의 소중한 친구이자 소일거리가 되었다. 예전에 정여사가 큰 아들과 살 때에, 집에 노트북이 있었는데 조카가 노트북으로 게임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의존적으로 활용을 했던 모양. 그러다가 바이러스라도 침투하여 작동을 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학수고대하면서 목을 빼고 기다린다고 했다. 아버지가 늘 고쳐주어서이다. 우리 정여사는 가전제품이 작동을 하지 않으면 전설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작동이 되지 않거나, TV도 작동이 안 될 때가 있다. 고장은 연락 없이 느닷없이 일어난다. 그러면 전설의 귀가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가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전화를 해 온다. 그러면 전화로 하나하나 설명을 하면 따라 해서 전설이 퇴근해서 올 시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전설은 어떻게 말하면 정여사가 잘 알아듣고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지를 한 번씩 봐 둔다.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로 온 지구가 쑥쑥한 상태이지만 우리 정여사에게도 이사와 건망증과 치매 초기 증상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고생을 하였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방법도 잊어버리고 TV 리모컨 사용법도 잊어버렸다. 사람이 멍청해졌으니. 하나하나 다시 가르쳐서 이제 스스로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음악 듣기 리모컨은 아직도 서툴다.


그런데 오늘 근무시간에 전화가 온다. TV가 나오지 않아서 그냥 음악을 들으려고 했는데, 음악듣기 리모컨도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혼자서 전설의 퇴근 시간까지 적막강산에 존재하여야 하는 것. 정전은 아닌데 아무것도 작동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런 날이 올줄알고 미리 생각해 둔 게 있다. 미리 가르쳐줘도 기억은 못할 것이라 말하진 않았지만. 요즘 새 아파트는 절전을 위하여 벽에 절전 기능이 있는 스위치를 미리 설치해 두었다. 지나가다가 혹은 자기도 모르게 벽 속 전원을 꺼버리는 것. 역시나 그랬던 것이다.


전화로 차근차근 방법을 가르치니 실천을 해보고 다시 연락이 온다. 가전제품들이 다시 작동한다고... 전화기 너머로 벌써 TV소리와 음악 소리가 들린다. 스마트폰으로 제대로 전설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 장하고, 가르쳐 준대로 행했다는 것이 장하고, 리턴콜을 다시 해주어서 매우 장하고 훌륭한 정여사.


전화의 충전이 안되면 저런 모든 일도 할 수 없이 적막강산에 홀로 답답하게 지내야 하니, 전화기 충전을 잊지 말라고 하니... 충전기를 꽂아 달라고 한다. 전설이 조용히 답했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익혀 두시오 정여사"



정여사의 폰은 윗쪽은 터치하는 스마트폰의 형식이고 아래는 꾹꾹 눌러서 사용하는 옛날폰의 방식이다. 두 가지 방식을 구현한 어르신용 폰.  앞뒤를 빨리 구분하라고 "앞"이라 적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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