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천국에 영원히 사는 전설:세포/뇌/인간/우주]
대학을 마치고 진학을 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그 목적이 [교수가 되는 것] 혹은 [연구원이 되는 것]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좀 지겨움이 있더라도 한 우물을 파고 있지 않았을까?
세상은 넓고 궁금한 것은 너무 많은 것이다. 한 우물을 파서 한 분야의 대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것들의 포기를 의미했다. 어린 시절의 사고의 결과는 그랬다.
한 분야의 대가가 되면 다른 영역에도 관심만 있으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세월이 오래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성향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흥미를 잃으면 그 분야를 도무지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분야가 궁금한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약.
이런 것들이 몸속에서 어떤 경로로 이용이 되는지가 너무 궁금하여 공부를 좀 더 해볼까 하고 석사과정을 갔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신기함에 매료되어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러 갔다.
분자가 세포라는 마이크로 월드에서 돌아다니며 작용을 하는 것은 마치 우주를 위성들이 돌아다니며 볼 일을 보는 것처럼 신기하고 신기하기만 하였다. 분자생물학에서 다루는 모든 과목이 좋았다. 과목 그 자체도 흥미가 있었지만 학부에서 배우지 않았던 혹은 한 chapter로 맛보았던 것을 한 과목으로 배우니 그 세계가 얼마나 섬세하고 다채로왔겠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세상을 보는 도구가 하나씩 늘어가니 말이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면 박사 후 과정 즉 포닥을 가야 하는데, 은사이신 선배들이 우리나라에 아직 도입되지 않았지만 미래에 필요한 학문의 영역을 제시한다.
정신신경생리학.
원래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심리학이나 철학이나. 그때까지만 해도 종교에까지는 관심을 깊게 가지지는 못하였다.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반을 "불교반"에 참가를 한 것을 보면 완전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에서는 심리학이나 철학에는 기웃거려도 종교에는 조금 물러 서 있었다.
비록 인문학을 전공하러 가지 않았으나 이과 학문 중에서 가장 인문학스럽다는 (분자) 생물학이나 (세포) 생물학을 공부하는 것이 부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습득을 했다.
정신 신경생리학은 인간의 몸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면을 다루는 신경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중요한 요소인 뇌를 다룬다는 관점에서 이 영역을 제안받았을 때 별 거부감이 없었다. 원숭이를 이용하여 뇌의 영역을 기능별로 mapping 하는 연구였다. 생물 즉 신체 중에서는 뇌가 가장 "인간적인 영역"일 것이라 판단하여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실험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연구목적이 첫째이고, 가설을 세우는 것이 두 번째이고 실험에 임하여서는 재현성이다. 재현성을 위해서는 동일 조건하에서 동일한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재현성이 나의 성격과 부합하지가 않는 것이다. 적어도 동일 조건을 3번 이상 실행해서 점검을 해야 하는데, 세상 싫은 것이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라 실험은 나에게 위험한 작업이었다. 박사과정은 그 재현을 위한 반복을 참았지만 포닥을 가서 하는 "정신신경생리학"의 영역에서는 스트레스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실험 시작부터 결과까지가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원숭이를 분양받아서 사귀고 인지능력을 위해 훈련을 시키고 fMRI test를 하기까지도 긴 시간이지만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실험에서 반감기가 너무 긴 원소를 사용해야 해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 오래 걸렸다.
인간의 몸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요소인 뇌의 영역을 다루는 학문을 선택하였건만 텅 빈 시간을 느끼는 것이었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야 할까.
인간 자체가 그렇게 궁금하면 아예 심리학을 공부를 하면 되지 않겠는가. 영어과정이 없었다. 플랑드르어 과정과 불어 과정만 개설이 되어있다. 철학과 다니는 후배는 (철학과로서는 그 친구가 선배 되겠지만) 심리학을 해도 결국은 철학이 그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그러했다. 신부가 되기로 한 학우들도 신학과로 진학하지 않고 다들 철학과로 왔다. 철학의 기본이 되어야 신학을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영어과정이 있는 철학과로 전과를 하는데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그렇다. 모든 학문의 기본은 철학이었다. 과학으로 신학으로 분리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철학 안에 있었다. 분과되어 과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철학으로부터 독립하여 제 갈길을 갔으나 원래 집은 철학이었던 것이다.
호기심은 내 모든 공부의 연결선이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공부, 독서, 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모든 것의 연결고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이고 그것을 유지하게 하는 힘은 호기심이다. 인간이 쌓아 온 인간의 역사(과거)만큼이나 미래에 관심이 많은 것도 달라질 미래에 사는 인간의 모습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호기심 천국에서 천사로 살기로 한다.
한 우물을 파서 성공한 삶을 사는 것도 아름답고 훌륭하였을 것이나 한 우물에만 살 수 없는 운명이었으니 어쩌겠는가. 다만 내가 호기심으로 파고 있는 얕은 우물들이 어느 날 소통하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우물을 좀 더 깊고 심도 있게 파서 통섭 혹은 융합학문의 한 영역에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욕심이긴 하다.
비공개구혼/전설/개인사/호기심/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분자생물학/정신신경생리학/철학/통섭/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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