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대가는 당당히 요구할 것]
신문이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돌려지고 있기는 하다. 우리 사무실에도 지역신문 하나 정도는 본다.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중앙지 조간 하나, 경제 신문 조간 하나, 지역 신문 석간 하나가 배달되었다. 아침 출근 전에 벌써 배달되어 나보다 훨씬 빨리 오는 상급자들은 열독 중이다. 지금은 인터넷 신문이나 모바일 신문을 읽고 있지만 말이다.
회사에서 결제하는 시스템은 아니라서 그 결제를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신문구독료를 월말에 받으러 오던 그 배달원은 항상 연구소 문을 소극적으로, 우리가 어디 불편한 곳에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윗몸으로 문을 살짝 디밀어 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몇 번이나 내가 그것을 먼저 보고 들어오라 해서 결제를 했다. 그때는 현금결제.
그때 당시만 해도 신문을, 볼 때는 잘 보면서도 구독료를 받아가기가 힘들 때가 많았다. 돈이 없어 한번 더 오라고도하고, 습관적으로 몇 번을 미루는 경우도 있고, 구독하고 싶지 않는데 넣었으니 몇 달 미루기도 하고. 뭐라도 불편한 일이 생기면 다른 배달소로 옮길 수도 있으니 최대한 조용히 결제를 받아가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잘 주는 곳이 더 많았을 것이다고 나는 믿지만 상황은 그러했다. 그 젊은 친구는 늘 의기소침한 몸가짐으로 내 앞에 섰다.
그 모든 상황을 내가 해결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나 한 가지는 해 주고 싶었다.
어느날.
= 나는 신문 구독료를 그달 그달 미루지 않고 낼 것이다. 그러니 한 가지만 부탁을 하자
= 예 뭡니까?
= 일단 우리 연구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당당하게 들어올 것.
= 예
= 주삣거리지 말고 나에게 바로 올 것.
=...
= 내가 딴 짓을 하거나 바빠 보이더라도 구독료 받으러 왔다고 당당히 말하고 기다릴 것.
= 예 (의아하게 쳐다본다)
= 열심히 일한 대가는 정정당당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수금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우리 연구소에서 나에게 받아갈 때는 당당하게 요구하고 받아갔으면 한다. 그러면 더 기쁘겠다.
그다음 달 방문은 달랐다. 신문이 사라진 요즘은 뭘 할까. 노동의 대가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기를.
전설/문화/일상/신문/노동의 대가/당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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