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HERstory 우리 정여사

정여사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by 전설s 2024. 3. 19.
반응형

[정여사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호기심 많은 성격에 이런 풍경은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봄바람이 불어오니 봄 나들이 생각을 한다. 우리 정여사는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했다. 젊었을 때에는 자식들을 건사하느라 휴가라는 것을 누리지 못했다. 나이 들어서는 허리가 고장 나는 바람에 또 바깥나들이가 쉽지 않았다. 외국여행은 한 적도 없다. 여권을 만들어 드린 기억이 없다. 그나마 젊었을 때에 친구분들이랑 제주도는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비행기를 탔는지 배를 탔었는지 너무 어려서 기억이 없다. 다만 사진에 그런 기록이 있어 알고 있다. 
 
1박 2일의 기차 여행을 매달 8년 정도를 하신 것이 우리 정여사의 여행의 시작과 끝이 아니었을까. 서울 아들네에서 손주 둘을 돌봐주다가 고향의 병원에서 한 달 분씩 고혈압 약을 타 갔던 시절. 서울에서도 약을 탈 수 있었는데, 굳이 고향에서 처음 진단을 받았던 그 병원을 계속 가고 싶어 하셨다. 
 
그 옛날에는 대학병원도 처방약을 56일 84일로 2달 3달씩 발행해 주지 않았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8일 혹은 30일. 서울서 오는 것이니 더 길게 달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나, 우리 정여사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1박 2일간 손주로부터 해방되어 기차 여행을 할 수 있고, 사람 없었던 고향집이 망가지지 않게 돌보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언젠가 본인이 다시 돌아와 살 집이라 더 애착이 간 것이었으리라. 또한 자식을 키우고 자신의 온 삶의 기억이 고스란히 있는 곳이었으니.   

8년을 한 달에 1번씩 1박 2일 일정으로 고향을 다녀가는 기차여행은 우리 정여사의 삶에서 화양연화의 시절이었을지도 모른다. 손주를 키우는 기쁨이 있지만 속상한 일도 있었을 테고, 혼자 시간 보내기를 정말 잘하시는 분이지만 친구 없는 외지에서의 생활이 어색하기도 했을 것이나, 이렇게 고향 와서 약도 타고 집도 청소하고 정리하고 코에 새 바람 넣으시는 좋은 시절.

정여사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여름 장마에 비가 그렇게 오다가도 내가 나들이를 할 때면 비가 잦았다. 겨울에 눈이 내리고 길이 빙판이어서 걱정을 하고 있어도 정여사가 길을 나서는 날쯤이면 눈은 그쳤고, 빙판길 사이로 눈이 녹아 길바닥이 드러나서 걷기에 덜 어려웠다는 것을 늘 말씀하셨다.

참 신기했었지 하셨다.

물론 매번 그러진 않았겠으나, 정여사가 걱정하는 정도보다는 늘 상황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거나 평소위 성격으로 보아 안전한 길을 충분히 찾아서 만반의 준비를 하셨을 터. 거기다 날씨도 좀 도왔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 없는 동안, 집은 정여사의 1달 나들이로 겨우 살아남았다. 집이 매우 튼튼한 것 같아도 사람의 온기가 없으면 상한다. 정여사는 매달 정성으로 그 집을 지켜 낸 것이다. 하니 이 어찌 화양연화의 시절이 아니겠는가. 귀국해서, 서울 살던 정여사와 함께 이 집에 귀환했다. 정여사가  기차 여행이 항상 더 즐겁게 느끼게 했던 우리 집으로. 지금 그 집은 재계발되어 아파트로 변했다.
 
  
 

고향이 바닷가라 바다 수영도 참 좋아하셨다. 외가댁에 여름마다 간 기억도 있네. 개구리 수영의 천재.



 

나의 화양연화 1

 

나의 화양연화 1

[나의 화양연화 1]코로나 환자와 접촉으로 14일간의 격리를 당하고 있는 친구의 카톡 상태 메시지가 :화양연화"라 되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전부터 그 메시지가 있었던 모양인데 나는 그 날

serendipity-of-soul.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