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영화 [당갈]과 [오징어 게임]의 공통점
친구랑 [당갈]을 보러 갔다. 조조를 보려 갔더니 극장이 텅 비어있다. 제일 뒷 좌석의 중앙에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당갈]은 인도 여성 자매 2인의 나름 성장기이다. 아버지가 레슬링 선수였는데, 그 딸들도 레슬링 선수로 탄생되는 실화를 다 다루었다. 여자 레슬링 종목이 있었으나 인도에서는 아직 활성화될 수 없는 시절인데, 그 아버지가 딸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처음에는 큰 딸 다음에는 둘째 딸이 편견에 맞서고, 훈련 조건이 전혀 없는 열악한 조건에 아랑곳없이 레슬링을 배운다.
이 영화를 위하여 실제로 레슬링을 배웠다는 배우들이 영화에서 하나씩 배워나가고 경기에 임할 때에, 보는 관객의 몰입도가 너무 좋았다. 아무도 없는 관객석의 제일 뒷 좌석에서 몰입되어 영화가 아니라 레슬링 스포츠 관람을 온 듯 했다. 경기가 시작되면 레슬링 경기장에 온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응원을 하고 선수와 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와 일체가 되는 체험을 했다.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영화관에서 관람을 하지 않고 스포트 응원을 하고 있는 우리들,
오징어 게임에는 왜 열광을 했을까. 수만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바로 [당갈]에서 처럼 마치 내가 경기에 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가 아닐까라고 분석을 해 보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게임들에 우리 자신을 넣어서 함께 게임하는 경험]을 착각하게 하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릴 적에 해 본 것들이라 쉽게 감정이입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젊은 층과 외국인들은 해 본 적은 없지만, 그 게임의 간단함으로 인하여 몇 개의 규칙만 알면 바로 자신을 감정 이입하는데 문제가 없게 되기에, 다들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를 본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게임을 하고 나온 기분이랄까. 물론 죽음은 처참하다. 고통스럽다. 아이러니이다.
게임은 재미가 그 목적인데 죽음을 걸어야 정말 슬픈 일이다. 이렇게 각박할 수가 없다. 그러나 드라마이니 죽음이라는 것을 잠시 제쳐두면 게임에의 몰입도가 매우 높다. [당갈]에서 나는 여자 레슬링 선수가 되었던 것처럼, [오징어 게임]에서는 각 게임의 선수가 된다. 그리고 때로는 관객으로 나와서 죽음을 실감하면 슬퍼한다. 경기에 져서 또 이겨서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간다. 재미와 웃음과 감동과 체험과 섬뜩한 진리가 살아 숨쉬는 [당갈]과 [오징어 게임]. [플러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즐긴다. 운이 좋으면 그것을 뛰어넘는 성장도 가능한데, 그것이 문화 예술의 목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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