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공정함의 의미]
배트맨이라는 이름은 너무 평범했나 보다. 아니 스파이더맨도 있고 아이언맨도 있는데 배트맨이 굳이 촌스러울 것도 없었다고 생각이 되지만 여하한 배트맨 시리즈는 [배트맨 비긴즈]로 시작했으나 [다크 나이트]로 이름을 바꾸어 시리즈가 나온다. 다크 나이트는 "어두운 밤(dark night)이 아니라 어둠 속의/검은/어둠의 기사(dark knight)이다. 박쥐가 검은색을 띠면서 야행성이라는 점에서 dark를 따오고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점에서 중세의 기사(knight)를 따와서 합성하지 않았나 싶은데 일단 배트맨의 닉네임이라 판단하면 된다.
[다크 나이트]에서 악당 조커는 배트맨과 시민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 정연한 "고담"시의 곳곳에 폭탄을 터뜨려서 혼돈의 도가니를 만들어 버린다. 경찰과 군대 등도 유인하여 고립시켜서 무정부 상태 즉 chaos를 연출한다. 그러한 가운데 핵폭탄을 가동해서 급기야 온 도시를 초토화하기로 작정을 한다.
조커가 말한다.
=혼란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공정함이다.
조커는 혼란을 조장한 범법자다. 그 이전에도 이미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가 파악하는 세상은 기득권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권력의 세계다. 약자는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피폐하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과정은 정의롭지 않고 결과는 공정하지 않는 경험이 많은 것이다. 사회 조직과 관습이 이미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파악한다.
그런 경험을 가진 자에게 혼란은 쉽게 말하면 계급장 내려놓고 한판 경기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조건을 내려놓고 오로지 "자신이 현재 이 순간 가진 것"만으로 승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겨루어 보는 것. 그것이 어쩌면 공정함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공정함은 다르다. 사람은 타고날 때, 인간이라는 평등함은 있지만 다른 조건은 평등하지 않게 태어난다. 두되 기능이 우수한 사람도 있고, 신체 기능이 우수한 사람도 있다. 둘 다 좋은 상태로 태어 날 수도 있다. 그리고 완전 그 반대의 상황도 있다.
그런 경우엔, 영화의 조커가 말하는 혼돈이 일으킨 그런 공정함을 추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공정의 극치를 말하는 것이다. 조건이 다른 사람이 어떻게 공정하게 경쟁을 하겠는가.
원시사회에서는 공정이라는 논의가 없었다.
소위 국가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나서 공정이라는 개념도 등장을 하였을 것 인 즉,
아래 그림에서와 같이
평등함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발디딤이를 제공하는 것이다(왼쪽:equality). 그러나 공정함은 그 사람의 조건에 맞게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하는 데 있다(오른쪽:equity).
그 국가가 복지 국가 (큰 국가/국가의 역할을 크게 한 국가)에 가까울수록 "함께 잘 살자"는 가치로 인하여 오른쪽의 공정함이 그 기준이 된다. 왼쪽의 평등함은 복지국가 이전의 작은 국가(국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제한한 국가)에서 통용되던 개념인 것이다.
아래의 그림에서는
1번의 경우처럼 진입장벽이 낮은 경우엔 동일한 발디딤이가 평등이기도 하고 공정이기도 한다. 그러나 2번에서는 벽이 높기 때문에 평등의 불합리함이 등장하게 된다. 작은국가에서는 그것을 외면하지만 큰 국가(복지가 높은 국가)는 차별을 통해 공정함을 되살린다. 합리적인 불평등이 오히려 공정함의 기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합리적인 불평등을 많이 용인하는 사회가 복지국가인 것이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사회적인 기득권들이 불공정함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환기시키는데는 성공을 하였다. 인정한다. 자신이 획득할 수 없는 조건들과도 함께 싸워야 하는 곳에서 공정함을 가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은 맨몸으로 싸우는데 철갑옷으로 무장하고 창과 방패를 들고 전장에 나오는 사람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공정함을 느끼겠는가.
조커의 마음을 백만분 이해를 한다.
억울하다. 속상하다.
정치가 올바르게 제 역할을 한다면 우리는 큰 국가(복지국가)를 지향할 수 있다. 개개인을 각별히 살펴서 각기 다른 발디딤이를 제공함으로서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본이 제공되는 나라로 갈 수 있다.
정치가 엉망이라고
혼돈의 사회를 만들어서
공정하게 승부를 하자고 하면
우리가
너무
원시적이지 않은가.
인간적이라기보다 동물의 원초적 본능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가정을 꾸려 나가듯이 세심함으로 국가에 관심을 가지고 주인됨을 행사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는 인간을 사랑하는 가장 구체적인 기술이다. 옆집 사람과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술이다. 옆집 사람의 행복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인간됨의 길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정치에 참여를 해야한다. 기본은 투표 행위이고 그 이후는 스스로 찾아 볼 일이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하였는가. 작은 단위인 가정도 당신의 관심과 손길의 영향이 지대한데, 큰 단위인 국가는 왜 당신의 관여없이도 굴러 갈 것이라 판단하는가. 당신이 주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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