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사람을 인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마법: 체서피크 쇼어 시즌1]
친구들의 단체 채팅방에 "사람을 인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마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적으려 한다니 친구가 이런 해석을 올려준다. 생물학적 사람에 인성 철학 문화등이 합해지면 인간인가? 중요한 개념과 용어가 포함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사람이 인간이고 인간이 사람이지 무슨 이런 구별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업그레이드라는 개념까지 들어가면 이 것이 뭔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책 [인간의 조건]에서 나름 설명은 해 두었다. 철학의 영역에서 인간의 조건을 정의하는 것도 많은 고찰과 숙고를 요한다. 여기서는 아주 심플하게 접근해보고자 한다.
체서피크 쇼어는 미국 드라마 이름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이름이다. 미국에 있는 해안이 있는 도시인데 실제 촬영은 캐나다의 나나이모에서 했단다. 악인이 없고 비비 꼬이는 전개가 아니라 일상의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부드럽게 묘사해내고 있다. 선악이 대립하지 않아서 마음의 스트레스를 만들지 않는 드라마라서 마냥 좋다. 자연 풍광과 그 체서피크 즉 나나이모의 풍경도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주인공인 애비는 이혼 후에 싱글맘으로 딸 둘을 키우며 빡빡한 도시 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대학 간다고 떠났던 고향인 체서피크 쇼어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직장으로 이직을 하고, 아낀 시간을 딸 둘을 돌보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도시에서는 직장인 엄마에게 최고로 중요한 것이 좋은 베이비시터(보모)를 구하는 것인데, 일 잘하던 보모를 놓치게 되면서 모든 것이 꼬였던 애비는 고향에 와서 안도한다. 할머니가 계셨고 동생들이 근처에 있어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직업에서 아낀 시간으로 딸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헤어져 살았던 5남매가 모이게 되면서 대가족의 장점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애비에게 버림받고 대도시에 음악을 하러 나갔던 트레이스는, 고향에서의 아픔이 있지만 도시 생활의 피폐함을 뒤로하고 고향에 돌아와 애비 아버지의 일을 도와 목수 생활을 하고 있다. 집을 고치는 일도 하고 자신의 집을 사서 고치는 작업도 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고향으로 돌아 온 사람들은 대부분 대도시에서 매우 바쁘게,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직장을 위해서, 직장에서의 일에 치여서, 직장 내에서의 위계 구조에 스트레스받으며 살아왔다. 누가 떠밀어 시작한 일도 아니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집세와 먹고사는 일을 해결해야 하니 일을 하고, 데이트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연스럽게 남들 하는 것처럼, 남들 하는 데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향에 돌아와 음악 이외의 일을 해 보고 있는 중이다.
애비와 트레이스는 도시에서 살 때는 모두가 그렇게 살고, 한 시간이 아니라 1초라도 헛되이 쓰지 않고 빠듯하게 사용하던 날들에서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남들도 그렇게 살고, 자신도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적으로 사는 것이라 큰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떤 연유로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고, 직업에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삶이 훨씬 풍성하고 풍요로워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시에서 애비의 동생들인 4남매가 모두 귀향하여, 민박을 열고 작은 서점을 경영하거나 직장을 다니고 자원봉사를 하고 학업을 이어가게 된다. 도시에서의 빠듯한 시간 활용 대신에 시간상의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가족 간의 대화의 시간도 늘었고, 가족 간이나 마을에서의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고향에서의 시간은 삶과 일, 삶과 직업이 균형을 잡아간다. 도시의 생활이 나쁘다기보다 고향인 체서피크의 시간에는 여유가 있고, 그 여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면서 함깨 사는 삶을 누리게 한다.
우리는 사람(종으로서의 동물)으로 태어난다. 이 지구상에 나 혼자 뿐이더라도 나는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원숭이나 침팬지와 다른 점을 "사람의 특징"으로 구사하면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화의 과정은 개인 혹은 사람 혼자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있고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와 상대 사이에 무슨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나와 상대"를 묶어서 우리는 인간人間이라고 한다. 사람의 특징 중의 하나가 자기 객관화인데, 인간이라는 관계 속에서 자기 객관화는 각각의 사람을 뛰어넘는 사고의 영역을 제공한다. 이 사고의 영역에 힘입어 우리는 소위 말하는 형이상학의 영역에 발을 디디게 된다. 생물체는 생존에 집중하는 한, 인간으로의 성장은 도태되거나 밀리게 된다. 생존은 관계나 형이상학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여유가 있을 때, 더 이상 생존을 염두에 두지 않을 때 "자기를 넘어서는 세상"에 대하여 사유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도시에서의 애비와 트레이스의 삶은 사람이라는 생물종으로서의 삶이 아니었을까. 주어진 쳇바퀴를 열심히 성실히 돌면서 세상과는 단절되어 살아가는 그런 삶. 사람으로서의 특징을 더 많이 가진 삶. 비록 주위 사람들과 말하며 살기는 하였으나 고향에서처럼 가족 간의 따스함이나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의 정이나, 캐서피크 가득한 해안선을 즐기는 여유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등은 누리지 못한 채 말이다.
오고 가는 말과 우정과 사랑과 웃음과 꿈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사람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삶이라고 우리는 정의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감히 말한다. 보잘것없는 이 여유! 이 여유가 사람을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기본 조건이다. 애비와 트레이스가 도시에서 만났다면, 그들은 이런 친밀감을 가질 수 없다. 트레이스가 음악 공연을 위하여 다시 체서피크 쇼어를 떠날 때, 그의 꿈을 존중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애비는 이런 워라벨이 깨질 것을 염려하였다. 여유는 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도 함께 있을 때 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 여유를 가지는 결정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자는 모두를 가질 수 없으니 사회적 성공이나 가족의 화합 중에 택 1을 하라고 한다. 또 혹자는, 대단히 성공할 이유가 있느냐 하면서 조금만 놓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많은 시간을 보내며 인간답게 살 것을 충고한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깨달을 일이 생기는 경우보다, 우연히 여유를 누릴 시간을 가지게 되었을 때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아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구나. 자신의 삶의 방식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복 받은 사람의 경우.
삶의 빡빡함을 내려 놓고, 여유를 가지게 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우리를 사람에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고 관계 속에 살게 한다. 여유가 있을 때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 배려심을 발휘할 수 있다. 모두가 삶이 팍팍하면 사람을 만나서 인간관계를 즐기기보다는 혼자 있기를 선호하게 된다. 여유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사람 사이 즉 인간 사이에 윤활유가 되어 원만하게 관계가 돌아가게 한다. 여유가 있어야 사람은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을 보기 시작한다. 세상을 생각한다. 함께 하는 미래도 생각한다. 생존에 아직 머물러 있으면 이런 것을 놓치게 된다. 여유를 돈을 살 수 있으면 사는 게 좋겠다. 돈이 아니라 마음먹기로 마련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는 것이 좋겠다.
여유로
인간답게
살아보자.
100세 시대에 맞는 인생 설계를 하는데, [인간적]으로 좀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인간이니까. 인간적으로 사는 첫번째가 여유를 찾아보는 것이다. 여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여유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삶을 누려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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