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판사: 선악의 기준/사랑/셀프-퍼니셔의 탄생]
지옥에서 온 판사에 나오는 지옥 판사(그녀의 직업은 재판관이었다)는 20명의 살인자를 처단하여 지옥으로 보내야 자신도 자신의 고향인 지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지옥에서 재판관으로 일하던 그녀는 부주의했던 심판으로 벌을 받아 인간의 세상에 온 것이었다. 드라마는 16부작이고 지금 10부를 마쳤다.
다행한 것은 실제로 살인이라는 범죄를 지른 인간을 대상으로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죄가 없는 사람을 처단하여 지옥으로 보내는 것은 허용이 되지 않는다. 악인을 구별하는 능력을 스스로 구현하고 있다.
1. 선악 기준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
보는 시청자는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살인을 저지른 자를 선별하여 지옥으로 보내는 미션이기 때문이다. 선한 자를 지옥으로 보내면 곤란하지 않은가. 다변화된 세상에서 선악의 기준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한 사람에게서 선악이 동시에 나오고, 한 사건에서도 보는 자의 관점이니 입장에 따라 선악의 기준도 모호하다는 것을 인간이 벌써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살인자만을 일단 악인으로 가정한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행위는 아직 동서고금 모두에서 악한 일로 규정하는데 일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2. 지옥에 없는 사랑에 임하는 자세는 드라마에서 어떻게 처리할까?
인간에게는 사랑이 중요한데, 지옥에서 사랑이 없다. 지옥판사도 사랑을 몰라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몸을 빌려서 사는 처지라 인간과 가까워지면서 인간의 정신세계에 스며든다. 감정이라는 것이 생기고, 사랑이라는 것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몸과 영혼은 완벽한 분리가 어려운 것인가. 지옥출신은 인간의 감정에 스며들어 눈물을 흘리거나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 눈물을 흘리면 다른 지옥정화자에 의해 처단을 받고, 사랑을 느끼면, 심장이 멈춘다. 아슬아슬하다. 목숨을 걸고 사랑을 해야 하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이 조절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사랑을 선택할까 안 할까? 사랑을 하면 그녀가 죽을 것을 남자가 알게 되면, 그 남자는 그녀의 사랑을 수용할까 안 할까? 서로 외면하는 선택을 하면 그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가.... 드라마가 이 딜레마는 어떻게 풀까. 흥미진진.
3. 인간세상에서도 사법기관의 오류는 수정이 되는 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옥에서 조차도 심판관은 정의로워야 한다. 그것이 심판관의 덕목이고 역할이다. 전 세계에서 직접 악인을 처단하는 영화와 드람가 범락하는 것은 바로 이 사법기관 (경찰 검찰 판사)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판단하다. 우리나라도 당연히 그렇다. 각 나라마다 사법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잘못됨을 바로 잡으러 노력(?)하는 듯이 보인다. 그런 노력이라도 보여야 인간 사회가 그나마 유지되기 때문이다. "눈 가리고 아웅'일지라도 시늉을 한다. 그런데 이제는 시늉조차도 너무 정치적이라 영화와 드라마는 "직접 처단"에 나선다. 외국에서는 인간이 punisher로 나서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옥 사지를 데리고 왔다. 작가도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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