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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DIPITY/DRAMAS & scenes

Maudie(우리말 제목은 "내사랑"):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장애 여인

by 전설s 2022.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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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die(우리말 제목은 "내 사랑"): 자시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장애 여인

1. 내가 중요하게 본 관점 중의 하나: 주체적으로 사는 여인, 모디



평범하게 주어진 환경에서 별생각 없이 주어지는 대로 살다가, 어는 날 어떤 이유로 자기의 삶은 무엇인지, 자신은 무엇인지를 문득 기억해 내고, 달리 삶을 사는 여성을 다룬 영화는 많다. [내 사랑]이라는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자기 자각을 장착하고 태어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그 자각을 바탕으로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켜 삶의 주인공으로 온전히 살다가 삶을 마감하는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델마와 루이스]나 [바그다드 카페] 등에서는 여성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삶에 대한 자각, 진정한 삶에 대한 자각을 외부로부터 자격을 받아 깨닫는다. 델마와 루이스는 깨달음이 즉각적으로 자유를 주었고 그래서 그녀들은 그랜드 캐년으로 질주함으로써 생을 마감하다. 반면에 바그다드 카페에서는 자신의 삶의 주체는 자신이고, 마음만 먹으면 달리 살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한 두 여인이 서로를 이해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열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내 사랑]의 주인공 모디 Mudie는 등도 휘었고 관절도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태어나서 어릴 적부터 차별을 받아왔다. 어려서부터 자신에 대해 생각했고, 자신을 객관화시킬 줄 알았으며, 나아가서 자신의 삶은 자신이 개척해야 함을 알았다. 마음에 가정부가 필요하다는 광고를 보고, 그녀는 과감하게 지원하러 나선다. 오빠와 숙모의 보살핌에서 이제 독립을 하고자 한 것이다.


장애를 가진 여성이 생김새도 남다르고 힘도 없지만 가정부의 역할을 해내겠다는 자신감 하나만으로 그녀는 고용주를 설득하여 거주 가정부가 된다. 스스로 집을 나서고, 스스로 남들이 욕하고 흉보고 뒷소리를 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먹을 수 있고, 머물 수 있고, 할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독립심을 보인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여인이다.


몸은 장애인이었으나 영혼은 한없이 완벽했던 그녀는, 늘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춤도 추고 싶고, 대화도 하고 싶다. 그러나 여의치 않자 그녀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그림 그리기]로 결정하고 집 안의 벽에, 종이에, 판자에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이 자기표현이고 스트레스의 표출 처이며 행복을 만드는 도구였다.

뉴욕의 한 여인이 그녀의 그림의 예술성을 높이 사서 그녀는 그림을 팔게 되고, 계속 그려나가는 자신의 삶의 여정을 시작한다.




2. 실제적인 장애인은 누구인가: 모디의 아름다운 영혼



모디는 실존하는 화가이다. 그녀는 그녀의 몸의 불편함 즉 비정상적인 척추와 관절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매우 매우 정상적이다. 오히려 몸은 멀쩡한 사람들보다 그녀는 더욱 합리적인 사고를 갖추고 있다. 세상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상하게 모디를 보면, 그녀의 불편한 몸이 아니라, 그녀의 눈으로 시선이 가고,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하게 되며,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녀의 영혼이 갇힌 그 몸이 아니라 그녀의 영혼이 다른 사람을 사로잡아 버리는 것이다.


가끔, 멀쩡하게 생겨갖고는 하는 짓은 그 모양인가? 하는 탄식을 드라마에서도 보고, 현실에서도 듣는다. 몸은 정상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그 영혼이 만들어 내는 행위에는 하자가 많다는 뜻이다. 그러니 세상은 알 수 없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 영혼이 무엇을 품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지의 방식이 더 그 사람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에는 몸 가꾸기도 그 영혼의 한 표현이라는 것에 토를 달지 않는다. 정상적인 몸과 잘 가꾸어진 몸이 다르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몸이 아니라 영혼이 고귀한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차별을 할 것이 아니라 차별을 혹시 내가 받는 대상이 아닌지 반성할 일이다.



3. 그녀가 세상에 맞서는 법: 홀로서기와 삶을 사랑하기




돌봐주던 오빠와 숙모로부터 독립할 수밖에 없었던 모디. 그녀는 그들에게 구걸하지 않았다. 부모의 유산으로 오빠가 자신을 돌볼 재정을 담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구걸하지 않았다. 구인광고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가정부 직장을 구한다. 물론 그녀가 가정부의 일을 잘해서는 아니었다. 그녀도 익숙하지 않지만, 그것을 해 낼 수 있겠다고 판단을 했고, 달리 다른 재주가 없어서였다. 그녀는 독립해야 한다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열었다.


그녀는 잘 걷지도 못하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그래서 숙모나 남편이 차나 탈것에 대한 협조를 미끼로 흥정이나 협상을 요구할 때도,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걸어서라도 자신의 선택을 실현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결정이 자신의 가치를 손상하지 않도록 자신을 격려하는 일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집안일을 마친 그녀는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지 않았다. 거실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물감을 위하여 고용인에게 숙식 외의 약간의 급여도 요구하여 물감을 샀다. 고용인은 그림의 의미에 관심이 없었지만, 별 반대가 없었고 거실벽은 그림으로 채워지기 시작하고, 집은 엉망진창에서 인간이 사는 거실처럼 모양을 잡아 가기 시작한다.


삶은 그림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고용주와의 사랑에도 그녀가 먼저 시작을 한다. 먼저 결혼을 제안한다. 남편이 될 고용주를 설득하여 결국엔 결혼을 한다. 그리고 결혼생활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그 마지막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녀는 남편을 남편으로 제대로 예우하고 본인도 예우를 받는다. 그림으로 유명세를 탄 아내가 부담스러운 남편이었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대화로 삶으로 체화하면서 삶을 이어나간다.


세상과 대면하기가 서툰, 그림에 소질 있는 장애인 아내와, 투박하기 그지없는, 가족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어부인 남편은 서로에게 영혼을 연다. 그래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안식처가 되는 관계가 된다. 그녀의 삶에 대한 선한 영향력은 드대로 남편에게 투영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삶에도.



4. 왜 제목이 [내 사랑]일까?



이 영화는 모디라는 화가를 다룬 작품이다. 별생각 없이 보다 보면, 그러다가 문득 제목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남자가 주인공인지 여자가 주인공인지 헷갈린다. 남자의 사랑을 다룬 것인지, 여자의 사랑을 다룬 것인지 헷갈린다. 그러다가 원제인 Maudie를 생각하면, maudie의 사랑을 다룬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마지막 신에서, 모디는 생을 마감하고 홀로 남겨진 그 남편을 바라보고 그의 시선으로 접어들면, 영화는 이 남자의 사랑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남편은 그녀가 가정부로 들어오고 나서부터 정상적인 거실의 모습을 보았고, 인간의 식탁은 어떻게 꾸며지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향유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을 준동물에서 인간으로 변모시켜준 아내는 얼마나 소중한가. 영화는 이 남자의 [내 사랑]을 다룬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의 영혼의 교감에 찬사를 보낸다. 부러움을 보낸다.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대세인 세상에서 당신들은 호모 사피엔스로 살았음을 인정하노라. 마음이 따듯해지는 행복한 영화이다.


5. 힐링의 영화: 내용만이 아니라 한 장면 한 장면 모두가 힐링의 순간




배경이 되는 마을과 사계절을 담은 모든 장면이 사진으로 저장해서 두고두고 보고 싶은 장면들이다. 화가의 일생을 다룬 영화이니 그녀의 그림이 더 소중해야 하지만, 그림만큼, 아니 그림보다 더 힐링이 되는 것은 감독이 뽑아낸 영화의 모든 장면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좋은 영화이다.


결혼식을 마친 모디와 남편이 신나게 집으로 가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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