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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SERENDIPITY/MEDITATION & books

칸트가 생각나는 산책

by 전설s 2021.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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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산책]

주 5일제가 아니라 주 2일제를 한 적이 있었다. 화목은 남들처럼 일하고 월수금은 도서관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철학에 관하여 책을 읽었다. 겸하여 우리나라 역사를 다룬 다큐를 영상으로 감상했다. 도서관에 소장된 영상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으니 나중에 사서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했다. 몇 년이 흐른 후 나의 직장을 방문한 그녀는 깜짝 놀랐다.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귀가해서,

 

정여사님?

왜.

오늘 도서관에서 참 괜찮은 사람을 만났어요. 생각하는 게 마음에 들어. 

(우리 정여사는 눈 번쩍 귀번쩍 입 번쩍하며)

뭐 하는 사람인데? 나이는 몇 살이고?

 

음 400년 전 사람이야.

 

푸하하 웃음을 떨어뜨린 정여사는 나를 외면하였다. 

 

아침 출근길을 한 시간 정도 일찍 출발하여 쭉 걷는다. 산책인지 운동인지 아리송한데 오늘 그것이 산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올해 들어 결심한 것이 하루 글을 하나씩 적어서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었는데, 걷다 보니 그 시간에 나는 글의 소재를 생각하고 글의 줄거리를 잡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운동이 아니라 산책이구나 생각했다. 

 

 

 

(출처:pixabay)

독일을 여행하다 보면 임마뉴엘 칸트가 태어나 평생을 살았던 도시인 쾨니히스 베르크를 들리게 된다. 그곳을 가게 되면 칸트가 매일 산책을 했던 [칸트의 길]이 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하였기에 그가 나오면 사람들이 시간을 맞출 정도가 되었다 하니 그는 매우 규칙적으로 살았던 모양이다. 그가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더 많은 감동을 해야 했지만 그 당시 그 산책길을 따라 호흡할 때는 살짝 막연한 감이 있었다. 

 

아침 출근길 산책이 내 글쓰기의 기초를 잡고 키워드를 잡고 줄거리를 잡는 시간이 되는 것을 보면서 문득 [칸트의 길]이 떠올랐다. 평생 자기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그토록 훌륭한 철학적 진보를 이루어 낸 사람. 그도 산책을 하면서 몸은 따스한 햇볕을 쬐고 머리는 부단히 그의 사상을 정립하고 사상을 녹여낼 책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순수 이성 비판과 실천이성 비판을 배울 때는 참으로 어렵고 난해한 가운데 그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철학적 전개의 치밀성에 여러 번 놀랐다. 판단력 비판에 이르러서는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는 1724년에 태어나 1804년까지 80년을 사는 동안 자신의 사상을 대표하는 비판 시리즈 저서 외에도 놀라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세계평화에 대한 그의 혜안이었다. 어설픈 기억으로, UN창설의 기본개념이 아마도 그에게서 시작되었을 정도이다. 

 

WWW의 시대도 아닌 그 시기에, 고향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사람이 오로지 자료와 문헌과 사람들과의 대화와 서신으로부터 철학사의 한 획을 긋다니. 또한 세계 평화라니. 이 작은 마을 구석에 처박혀 사는 그가. 신기한 일이지. 

 

감히 대철학자 칸트의 산책과 나의 산책을 비교하기는 민망하지만 산책하는 동안 뇌는  활동을 하고, 사고를 진전시키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는 점은 칸트도 나도 공유하는 일이 아닌가. 그 결과물이 대단함과 소박함으로 나누어지기는 해도 말이다. 

 

스스로 산책해 보면서, 땡볕에 걸었던 그 길을 몇 년이 지나 지금 더 실감한다. 아! 칸트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해야만 했었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다 밝힐 능력이 되지 않아 적을 수는 없으나 또한 그의 철학의 심오함과 독특함을 논할 수는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의 논리적 전개는 나를 매우 편안하게 하였다. 

 

그 날 읽었던 책은 기억나지 않으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는 말에" 반기던 정여사의 반응만 기억이 난다. 


산책길에서 산책하는 것을 하루 일과 중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던 임마뉴엘 칸트를 떠올린 하루였다. 

 

교수 탁자에 녹음기 열 개쯤 올려놓고서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수업 듣던 날들이 그립구나. 철학과 수업은 늘 그렇게 진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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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아침 산책길의 일부다. 나는 길이 나오는 사진 명화가 좋다. 외부로 향한 호기심이 아직 남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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