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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SERENDIPITY/MEDITATION & books

성형견적서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by 전설s 2021.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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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견적서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어떤 빛깔이어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입니다. (출처:pixabay)

 

2003년쯤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상당수 사무실에 다분히 형식적으로 배달된 신문이 있지만 그때는 신문이 지대한 영향을 미칠 때이니 우리 회사에도 아침에 몇 종류의 조간신문이 배달되었다. 

 

하루는 동료 여직원이 우와 우와 하면서 혀를 내두르고 있어서 뭔가 하고 관심을 가져보니 어느 일간지에서 여성의 전신 사진을 놓고 부위별로 성형비용을 세세히 적어 놓은 것이었다. 

 

지금은 성형수술을 성형시술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우리나라 말이 아닌 영어로 엄청난 종류의 시술이 소개되고 있었지만 그 때만 해도 종류는 비교적 뻔했다. 그렇지만 전신을 놓고 각 위치를 총망라하여 소개한 것은 처음 본 것이라서 전부 둘러앉아 자신의 견적서를 작성해 본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젊고 예뻐서 그다지 성형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지만 젊어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 기준으로 견적을 뽑아보니 3천만 원은 족히 되었다. 지금보다 기술이 덜 발달하여 더 비싸다는 것을 감안하고서. 

 

그래서 그 날 집에와서 정여사에게 크나 큰 감사를 드리면서 말했다. 

 

"정여사님! 오늘 연봉만큼 돈을 벌고 왔네요. 감사합니다."

"어째서?"

"성형 견적서를 뽑아보니 그만큼의 돈이 절약되었답니다"

 

대화하면서 신나게 웃은 기억이 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이한 경험이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출처:pixabay)

 

 

젊어서는 할 이유가 없었으나 나이가 들면 또 필요한 시술이 발생할 지도 모르겠다만 당시에는 내가 미래에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워낙 성형시술이 일반화되다 보니 슬그머니 관심이 가져진다. 주위 친구들도 살짝살짝 손을 댄다고 하고. 

 

성형의 이유도 많이 변했다. 그 때는 정말 못난 구석이 있어서 그것만 교정하면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었던 반면에 요즘은 거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짝살짝 하자가 있는 곳을 손보는 정도로 가볍게 진행을 한다. 그래서 시술 후에도 큰 변화는 없는 가운데 뭔가 더 세련되고 깔끔하고 예쁜 여운을 주는 경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자신감이라는 것이 있다. 인정욕구는 타인에 의해 해소되는 것이지만 조금 더 예뻐져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부여할 수 있으면 하루하루의 삶이 더 신비로워지는 것이다. 성형중독이라는 어마어마한 영역으로 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지켜내는 한에서 약간의 조정은 화장하는 것과 별반 다를까 하는 가벼운 생각을 해본다. 

 

나는 성형 혐오론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등 떠밀어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본인이 하겠다면 적극 지지하는 편이다. 그 사람의 "이유"를 존중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에 비해 기술적으로 더 발달하였을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 주위 사람들은 살짝 조정을 하는 것이지 급격한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나는 좀 느슨한 판단을 한다. 

 

나이를 먹는 것이 나는 싫지가 않았다. 

늙는다는 것이 나는 싫지가 않았다. 

 

나이가 들면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혜로움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결국 알고 말았으나 젊은 사람보다는 삶을 더 오래 산 사람이 지혜로울 확률이 높은 것이라는 믿음을 아직 다 버린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염색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주름이 늘어나는 것에도 별로 거부감이 없다. 흰머리나 주름은 삶을 살아낸 증표이고, 그 또한 나는 좋았다. 

 

얼굴이건 몸이건 의식이건 정신이건 업데이트는 좋은 것 아닐까.(출처:pixabay)

 

굳이 성형을 하지 않더라도 성형 견적서를 한번 작성해 볼 예정이다. 

이유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순간이 될 것이기에.

 

견적서에 등장한 수많은 시술들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의 돈을 절약하게 되니 그 옛날처럼 그날 저녁에 정여사와 또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오늘은 이만큼의 절약이 있었구나. 오늘은 정여사가 나를 잘 낳아서 이만큼 지출이 줄었구나. 

 

성형 견적서를 받아 들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시술을 행하지 않는 만큼 내가 버는 것이고 절약하는 것이 된다. 내 마음먹기에 따라서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세상만사가 그러하지만 이상하게 성형 견적서가 주는 재미나 즐거움만큼은 아니었다.

 

왜일까? 

나는 나의 현재의 모습이 나름 좋기 때문이다. Not bad.

미래에는 모른다. 약간의 지불이 있더라도 "유에서 더 큰 유를 창조하는 기쁨의 소유자가 될 지도"

그러나 현재는 내 모습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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