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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SERENDIPITY/TRAVELS abroad

친구를 초대해놓고 TV시청이라니:만남의 목적

by 전설s 2021.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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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초대해 놓고 TV 시청이라니:만남의 목적]

2층에 아르헨티나 국적의 친구와 네덜란드 국적의 카리비안 출신 친구가 살았다. 이 친구들은 11시/6시 하루 두 끼 식사를 했고 나는 8시/12시/6시 3끼 식사를 했다. 저녁 시간이 겹치는데, 이 친구들은 새로운 음식을 만들면 무조건 나를 초대했다. 특별한 음식이어도 초대를 했고, 특별하지 않아도 그 날 오랜만에 만든 음식이면 또 초대를 했다. 

 

초대라는 것은 특정하게 대화할 일이 있거나 만남의 이유가 있을 때 하는 행위가 아닌가. 그러니 이 친구들도 초대를 했으면 대화를 하는 게 정상이지 않은가. 

 

그런데 와인 모임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저녁 식사 모임에서는 자꾸 TV를 켜 놓는 것이다. 아니 TV를 시청할 요량이면 나를 왜 부르는가. 그대들끼리 볼 일이지. 나를 불렀으면 대화를 해야지. 왜?

 

어느 날 물어보았다.

 

= 왜 친구를 초정해놓고 TV를 시청하는가?

= 친구를 불러놓고 왜 TV 시청을 하면 안 되는가?

= 아니 친구랑은 대화를 해야지. TV는 친구가 없어도 언제나 볼 수 있지 않은가?

= 오오, 전설. relax. TV를 본다는 것은 서로 편한 사람들끼리 여유를 즐긴다는 것이고, 보다 보면 대화할 꺼리가 나오지 않나!

= (이 친구들은 나를 편한 관계라 생각하는데 나는 너무 거리를 두고 있었나 싶어서 뜨끔하면서도) 아, 그래도 TV를 함께 보는 건 난 정말 익숙지 않아... 

 

실제로 TV는 그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하기 쉽지 않지만 공부하러 간 그 나라에서는 가능했다. TV 화면 속에서 한 주제가 나오면, 적어도 10가지 관점이 튀어나와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다. 

 

여자/남자, 흑인/백인/황인, 신학 전공자/철학 전공자/자연과학 전공자/, 유럽인/동양인.

 

자기가 속한 카테고리 안에서 한 가지 주제가 나오면 할 말이 많았고, 다각적 시각이 공유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친구들끼리도 TV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TV는 가족과만 보는 줄 알고 살았다. 그러나 귀국하고 나서는 원상복구되었다. 

 

귀국하고나서 수용되지 않았던 것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데 친구가 핸드폰을 계속 보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마치 그 옛날 TV처럼. 그런데 그것도 TV가 소재를 주었던 것처럼 이제 사람들 간의 대화에 양념 같은 도구가 되어버려 적응을 해야 했지만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만났으면 혼자서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아니한가. 이를테면 대화. 

 

이제야 친구들끼리의 특정 주제가 없는 "수다의 중요성"에 조금씩 눈뜨고 있다. 조금 더 있으면 TV 시청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대화의 중요성에도 접근할 것 같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에. 

 

전설/개인사/친구모임/식사모임/대화의 주제/TV시청/만남의 목적

 

 

친구는 스튜를 참 맛나게 끓였는데....(출처:pixabay)

 

 

[플러스]

식사초대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한국음식을 잘 하지도 못하거니와 요리를 좋아하지도 않고. 저렇게 자주 식사초대를 하는데 나는 한번도 초대를 못해서였다. 나중에 그 친구들이 한국 왔을 때 한국음식을 대접했다. 나란 사람도 참 답이 없었다. 그 스트레스는 가나에서 온 친구가 해소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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