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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EUREKA/HOMO Solidarius

나무는 왜 겨울에 이사를 했을까?

by 전설s 2021.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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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를 달리던 겨울의 어는 날. 출근길의 칼바람에 옷깃을 여미는데, 거목감(지금 당장도 적당히 거목이지만 완전 거목은 아닌데, 20년쯤 흐르면 거목일 것 같은)의 나무가 잎사귀 하나없이 가지도 적당이 다듬어져 뎅강 잘린 체, 옷 하나 입지 않은 추운 모습으로 화단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겨울이니 잎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만 안쓰러워서 볼 수가 없다. 이사를 와서 아직 보금자리인 화단 어딘가의 흙 속으로 가지 못하고 인간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아니 꽃피는 봄, 땅이 따스할 만한 시절에 이사를 시켜주지 엄동설한에 너무한 것은 아닌가. 원래 나무는 한 겨울에 이사를 시켜야 하는건가. 아니면 아파트와의 계약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런 건가. 
 
가드닝을 해 본 적도 없고, 나무의 생리도 딱히 공부해 본 적이 없는지라 아쉬운 마음만 안고 지나쳐 왔다. 이번 겨울에 제법 많은 나무가 우리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거울을 낯선 곳에 와서 차갑게 지내고나서도 봄의 온도가 되니 잎을 내기 시작한다. 여름이면 잎은 제법 무성해지겠고, 몇 년이 지나면 그늘을 주는 아름드리나무가 될 조짐도 있다. 
 


봄이라고 녹색잎이 피워내는 나무를 보자니 불현듯 겨울의 그 의문이 가시는 기분이다. 잎이 무성한 시기에 나무를 이사를 시키면 그 무게와 부피를 감당하기 어렵겠구나. 겨울에 앙상한 가지만 있어도 그 뿌리와 함께 전체 무게가 사람이 들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기계를 이용하여 들어 올리고 운반을 하고, 옮기는 차도 일반 용달차는 택도 없었다. 하물며 잎이 무성하다면, 이사하기가 힘들겠구나. 

봄이 되면 이제 새싹을 피우는 중인데 옮기기가 그렇고, 여름이 되면 더더욱 무거워지고 풍성해질테니 옮기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아무리 기계를 사용해도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이사이다. 추운 겨울에 옮겨져서 춥지만 그 토양에 적응을 하고 봄에 잎을 내는 것이 맞는 수순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금 아파트에 지난 겨울에 이사 온 거목감의 거목들이 파릇한 잎을 내기 시작했다. 세월이 가면 녹음 우거진,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내는 아파트가 되지 않을까 한다. 사실 기본 10년은 살아줘야 그 기분을 살짝 느낄 수 있을 터이다. 아니면 20년이 지난 후에 나무가 만들어 낸 아파트 분위기를 느끼러 와 보고 싶다. 계속 한 20년을 살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될 터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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