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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HERstory 우리 정여사

정여사가 살았던 방: 참 다행이야

by 전설s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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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사가 살았던 방: 참 다행이야]

아날로그 벽시계. 정여사가 아꼈던.

방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 큰 TV.
TV를 올렸던 장식장.
그 긴 장식장의 왼쪽은 음악 듣기용  정여사가 사랑하는 CD/usb겸용 플레이어.
중간과 오른쪽은 스탠드 TV.
그 옆으로 작은 탁자에 작은 나무들. 지금 나무들은 거실로 이사했다.
TV위쪽 벽면으로 큰아들 작은아들 결혼사진, 정여사 본인의 결혼사진과 정여사 동생의 결혼사진을 놓아, 높은 인구밀도로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사진곽에 넣어 걸어 놓았다.
그 가장 중앙에 아날로그시계가 있다. 
 
침대에 걸터앉으면 정면에 보이는 정여사의 세계다. 
 
그리고 오른쪽 벽면에 붙박이장. 얼마 만에 가져 본 자신만의 옷장이었던가. 이사해서 옷을 걸어 드리니 참으로 좋아하셨네라.
 
정여사가 요양병원으로 가시고, 나는 정여사방에서 잤다. 그 세월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정여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녀를 위해 기도부터 하고 시작한 날들이었다. 장례를 마치고 나서, 아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고 나서 머리가 애기 머리가 된 이후로도 이 방에서 자고 일어났다. 오늘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문득 새삼스럽게 행복한 마음이 든다. 편안한 마음. 쾌적함. 정여사 방에서 1년을 잤지만, 처음으로 친숙하고 평안함에 안도감이 들었다. 아! 우리 정여사도 아침마다 이렇게 안도하며 평안한 마음으로 기상을 했겠구나. 
 
거동이 불편하여, 거실로 식사하러 나올 정도가 되면서 휠체어 없이 바깥출입이 어렵게 되자, 정여사가 자신의 방에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 정여사님, 혼자서 안 심심해요? 정여사님, 밖에 안 나가고 방에만 있으니 안 답답해요?
= 엄마 걱정은 1도 할 필요가 없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이 방에 다 있다. TV안에 세상이 있고, 재미없으면 음악 들으면 되고, 바느질도 가끔 하고...
= TV만 보고 있으면 심심할 수도 있지. 사람을 안 만나잖아요. 
= 너는 컴퓨터 보고 책 읽고 하면 심심하냐?  꼭 사람을 만나야 안 심심해?
= 그렇네. 
 
정여사는 항상 옳다. 
그 대화가 나를 안심시키고 위로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정여사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행복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떠서 처음 느낌이, 아!!!!!! 우리 정여사도 이런 편안함이 있었겠구나. 대화 속의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되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도, 엄마 걱정은 절대로 하지 말라 하셨다. 워낙 적응력이 뛰어나신 분이라 당연했다. 그럼에도 내가 걱정을 한 것은 단기 기억 장애가 있으니 그것이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병원에서는 다소 불편하였을지라도, 일단 집에서는 늘 말씀하셨던 것처럼, 자신의 세계 속에서 나름 행복하셨겠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정여사 방에서 1년을 자고 일어났는데, 오늘 아침에 드디어 그 결론에 도달한다. 
 
훌륭한 정여사.
어떤 순간에도 자신에게 주어 진 시간을 완벽하게 활용하실 줄 알았던 분!!!! 긍정적인 생각밖에 하지 않았던 분!!! 정여사님!! 하늘나라에서도 그리 살고 계시겠지요. 잘 기다리고 계세요. 내가 간다. 넉넉잡아 30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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