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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SERENDIPITY/DRAMAS & films

낯선 아들 낯선 엄마: 아더후드 otherhood

by 전설s 2021.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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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아들 낯선 엄마: 아더 후드 : Otherhood]



그 누구도 부모의 역할을 미리 연습할 수는 없다. 그리고 부모도 불완전한 존재라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삶의 여정 중에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기억을 해도, 자녀들은 전혀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것을 다루고 있다. 엄마는 분명히 실수의 순간이 있었어도 그 조건하에서는 최선을 다했기에 스스로 위로를 하고 있을 지라도, 자녀는 그 기억으로 트라우마에 갇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도 모자의 관계라 해서 늘 다정하고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생기면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에피소드들이 쏟아져 나오며 서로 생채기를 내게 된다. 긍정적인 것은, 이제 어른이 되었기에 서로 상대에게 생채기를 다시 내더라도 수습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어른이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쉽지 않지만, 그들이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고, 부모도 더 지혜로워졌다면 화해의 순간을 맞게 된다. 그러면서 트라우마나 불편한 기억들을 치우게 되고 교정하게 된다. 그러나 솔직하게 드러낼 기회를 가지지 못한 관계는 늘 물과 기름처럼 감정이 섞이지 못한다.


엄마는 당황한다. 자식들이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다니...
자식들도 당황한다. 엄마가 그것을 잊고 있다니...
그리고 그 사건을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니...


그 오해를 푸는 것은 대화의 시간이다. 그냥 만들어지는 시간이 아니다. 누군가는 사고를 쳐야 하고, 그러다가 감정이 폭발해야 그 심연의 사연과 상처가 수면 위로 오르게 된다.


[아더 후드 Otherhood]는 [마더후드 motherhood]에서 M이 제거되었다. [엄마 느낌]이 아니라 자식도 떨어져 살게 되면 [다른 사람 느낌] 혹은 [생뚱맞은 느낌]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한 마을의 세 여성은 아이들이 자라서 도시에 살게 자신들은 마을에서 우정을 이어간다. 자식이 있지만 서로 살뜰하지 않고 형식적인 관계만 이어가는 상황이다. 그래서 셋은 도시의 아들에게 무작정 쳐들어간다. 바로 아들네 집에 여행 가방을 디밀고 들어가는 경우는 그나마 성공. 다른 엄마 둘은 호텔에 묵으면 아들네 집에 가서도 선뜻 며칠 머물고자 한다는 뜻을 전달하지 못할 만큼 서먹하다. 아들 집인데, 그리고 결혼도 안 한 아들 집이라 며느리도 없는데, 정말 이상하다. 남의 집보다 더 생소한 아들이라는 사람들의 집.


며칠 머물겠다는 엄마가 너무 당화스럽고 성가시고 이해가 안 가는 아들들도 며칠은 참아내면서 우당당탕 서로에게 달리 기억된 것들을 하나둘씩 꺼내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조언도 오고 가는 상황까지 전개가 된다. 삶의 지혜를 발휘하는 순간이 오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서로 새 관계를 설정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들은 아주 완벽한 관계가 아니라면, 성인이 되어서 한 번쯤 인생을 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라오면서 상처가 되었던 것들을 서로 드러내어 대화를 나누며 다시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같은 사건에 대하여 다른 기억을 가지고, 다른 이해로 인하여 정신적 트라우마가 되었다면, 이제 성인으로서 드러내고 서로 이해를 다시 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정말 좋을 듯하다.


[아더 후드]는 성인이 된 아들과 엄마의 어설픈 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좋고 나쁜 기억을 동시에 가진 사람들. 그러나 지금은 안 좋은 기억이 더욱 부각되어 각인되어 있는 삶. 그래서 연락 없이 찾아온 엄마의 방문이 무척 낯설고 성가신 아들들. 내가 낳고 키운 자식이고 전화로 알러뷰를 말하는 사이인 아들의 집에 왔는데 왜 이리 어려운지. [엄마 느낌] 혹은 [다른 사람 느낌]을 잘 묘사한 좋은 영화이다.

[플러스] 자식과 부모의 관계를 다루는 영화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델마와 루이스에서 처럼, 세 엄마는 이제 [엄마]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으로 돌아가 본다. 처녀시절의 꿈도 기억해 내고, 젊은 시절의 열기도 느껴보고. 엄마도 사람이었던 것이다. 고상하고 우아하고 자애로운 엄마로 살았지만, 우리 엄마라는 사람도 댄스를 좋아하고 대화를 좋아하고 놀 줄도 알고....

아무리 좋은 관계였어도 성인이 되어, "트라우마"를 주제로 대화를 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편한 일들이 있었다면 더 더욱 (사진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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