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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DIPITY/DRAMAS & scenes

가족소설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의 다른 버전들: 체서피크 쇼어 시즌 3

by 전설s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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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의 다른 버전들: 체서피크 쇼어 시즌3]

가족을 모티브로 한 소설의 당혹함


좋은 소설이나 드라마 작가가 구성을 어떻게 하고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어떻게 가져가는지는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체서피크 쇼어 드라마의 5남 3녀 중의 셋째인 브리는 처녀작의 소재와 인물을 자기의 가족과 자신의 주변 인물에서 찾는다.


작품으로 완성을 해서 이혼한 부모와 할머니 그리고 남매들에게 읽게 한다. 허구이지만 가족을 기반으로 했기에, 실제 삶과 똑같지 않지만 각 에피소드가 가족의 체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격려도 필요하고 무언의 허락 내지 동의가 필요함 때문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18년을 살아온 시점에서, 브리가 소설의 형태로 가져온 과거의 기억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기억의 다른 버전들

8세부터 16세의 5남매는 인사도 없이 집을 나간 엄마에 대한 기억부터 이혼에 대한 경험을, 18년에 걸쳐 진행된 삶 속에서 같은 사건에 대하여 각기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엄마가 인사없이 가출을 했다는 것과 이혼이 성립되어 엄마 없이 할머니와 아버지 손에서 자란 것만 가족들 모두에게 공인된 팩트이다.


가족은 모두 그 사건에 대해 상처를 입고 각자 해결 내지 보류한 상태로 삶을 살았고, 해결과 치유 과정을 갖지 못했다. 또한 어린 나이의 아이들은 자신의 나이에 경험할 수 있는 부분 그리고 각자에게 가장 쇼킹한 지점을 중심으로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창작자인 브리조차도 그들의 입장에서 자신이 해석하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부분만을 드러낼 수 있었는데, 가족들의 기억은 브리의 기억과 달랐던 것이다. 브리가 해석한 것과 자신의 경험이 달라서 당황스러워한다.


허용되지 않는 전지적 작가 시점


우리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작가는 모든 것을 꿰뚫고 있음을 상정한다. 일반 소설은 그러하다. 그러나 체서피크 쇼어에서 브리의 소설은 자신의 가족을 모티브로 하였기에 독자 즉 가족들은 작가의 전지적 시점을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 상의 인물일 뿐이지만 가족의 의견과 동의를 구할 수밖에 없다. 일반 소설과 다른 점이라 해야겠다.


대화가 할 수 없는 글의 장점



대화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지만 이 가족에게만 일단 국한시켜보자. 에피소드에 대한 기억의 차이와 그래서 다를 수밖에 없는 해석이 있다.

등장인물 당사자들은 글을 쓴 작가인 브리에게 와서 불평을 하기도 하고 따지기도 하고 한다. 의견의 상충이 있을 때, 얼굴을 맞댄 대화에서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뛰쳐나가서 진행이 안되어 미완인 채로 남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일단 글 즉 소설은 중간에 화가 나서 책을 집에 던질지라도 끝까지 마저 읽어서 글이 말하는 것을 다 듣고 오는 이점이 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오기에 대화보다 해결이 원활할 수 있는 지점이 있긴 했다.


시간차를 두면서 감정의 순화 과정이 있게 되는 것이다.

캐릭터 해석의 차이



사람은 자신의 개성과 성격을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남들이 묘사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표현이나 평가에 고무되기도 하고 놀래기도 하고 무서움을 느끼기도 하고 심지어 당황에 당혹하기도 하다. 때로는 남들이 내가 미루어 두었던 부분을 꿰뚫고 있으면 오싹하기도 하고 벌컥 화를 내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인가?
나는 네가 그려내는 그 사람인가?
그 둘은 같은가 다른가?
같아야 하는가 달라야 하는가?
같고 다름은 도대체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일반 소설이면 아무도 작가에게 가서 따지지 않을게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이를 모델로 삼으면 이런 시비가 생긴다. 견해가 생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전지적 시점을 애초에 가질 수 없는 불완전한 생물체가 아니던가.


다행한 것은 가족들은 18년 묵은 각자의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고 오해를 수정하려고 하고 어느 정도까지는 성공한다. 그래도 안 되는 것은 과거로 묻어둔다. 미래로 한 걸음 내딛는 것으로. 혹시 시간이 해결할지도 몰라서.


한 가족이 한 사건에 대하여 다른 기억의 버전을 가진다는 것은 당연하다. 사건 자체를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다르니 각자 걸러진 채로 기억을 하게 된다. 같은 소재 다른 기억이 될 가능성마저 있다. 해석의 차이가 아니가 아예 다른 사건으로 인식되고 기억되어 있을 수 있다. 또한 기억이란 것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장치가 아니던가. 한 사건은 다른 사람에게 다른 버전으로 기억되고, 한 사람에게는 그 기억조차 100프로 신뢰할 수 없다. 가족 소설은 그러한 것들이 극대화되어 드라마 속에 녹여져 있다. 시즌1부터 끝까지.

이런 심플한 광경마저도 모두의 기억속에는 다른 느낌으로 기록되게 된다. 지금 당장 보는 이 와중에 서로 대화를 나눌지라도 (사진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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