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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HERstory 우리 정여사

흰 죽 한 그릇에 담기는 엄마라는 사람들의 위대함

by 전설s 2021.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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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죽 한 그릇에 담기는 엄마라는 사람들의 위대함]



선친 기제사 일이었다. 본가에서 멀리사는 정여사의 아들들은 기제사엔 그 집의 대표만 오기로 합의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리지널 멤버들만 모여서 제사를 지내보는데.


제사를 마치고 늦은 식사를 임하는 두 아들들. 그런데 큰 아들의 식사 손 놀림이 원활하지 않고 식사를 잘하는 것 같지가 않다. 딸도 오빠가 좀 더 먹었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기에 말로 거들고, 생선 뼈를 발라주고 있지만 뭔가 원활하지 않은 것을 멀찌기서 눈치채는 정여사.


아들은 몇 년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질병 진단을 받았으나 노모를 신경 쓰게 하고 싶지가 앉아서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 세월이 지나니 몸도 축나고 오늘 같은 경우엔 식사량으로도 들키고 만다. 급기야 두 동생이 야단을 맞는다. 미리 말을 안 해 주었다고.


정리를 마치니 밤 12시가 넘는데, 정여사는 죽을 끓이라고 한다. 다만 흰죽을 끓이라고 한다. 큰 아들을 죽을 한 그릇을 먹여서 재워야겠다는 것이다. 진정인가? 밤 12시인데 또한 죽을 다 끓였을 시간에는 분명 자고 있을 것인데... 정여사의 눈을 본다. 그 눈빛에서 물러섬이 없다. 그래서 쌀을 담근다. 못 먹이더라도 내일 아침에라도 죽을 먹기가 더 편하니 일단 끓이자 싶어서 딸은 그 눈빛의 강렬함에 순순히 물러난다. 그리고 끓일 준비를 한다.


죽이 끓고 퍼지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다. 아들은 잠에 떨어졌는데, 정여사는 죽을 한 그릇을 퍼오라 하신다. 진정이어서 한 그릇을 뜬다. 스스로 식히면서 아들을 깨우라고 한다. 작은 아들과 딸은 설마 설마 하면서 깨워보지만 잠들어있다. 겨우 깨웠지만 먹을 생각이 없는 아들. 정여사는 본인이 먹지 않으면 너희가 떠 먹이라고 하신다.

작은 아들은 그 형을 부축하고, 딸은 정여사가 식혀 준 죽을 한 숟갈씩 먹여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받아 먹는다. 배가 고팠나 보다. 제삿밥이 너무 꼬들꼬들하여 씹기가 힘들었을까.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제삿밥을 특별히 꼬들하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정쩡한 자세로 정여사의 감시 아래 우리는 죽을 천천히 한 숟갈씩 먹인다.


12시에 제사상 뒷 정리를 마친 딸에게 죽을 끓이라 할 줄도 몰랐고, 끓인다 해도 그 밤에 먹일 줄 몰랐고, 본인이 자고 있는 것을 깨워서 먹일 줄도 몰랐고, 본인이 아니라 작은 아들과 딸이 떠 먹이게 될 줄도 몰랐고, 그 모든 것을 정여사가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지휘할 줄을 끝내 딸은 상상하지 못했다.


정말 지금 끓이라는 것일까.
내일 아침에 먹어라 하시겠지.
자고 있는데 설마 깨울까
설마 우리에게 먹이라고 하실까.


작은아들도 딸도 큰 아들의 엄마는 아니었던 것이다. 큰 아들은 정여사의 아들이었다. 작은 아들이 아무리 형을 아버지처럼 존중한다고 해도, 정여사를 따라갈 순 없었다. 죽 한 그릇이 얼마의 에너지를 낼까 의심스럽지만, 80 평생에 죽 한 그릇의 힘을 아셨던 정여사는 큰 아들에게 죽 한 그릇을 먹이지 않고는 그 밤에 잠을 청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작은 아들과 딸도 죽 한그릇의 힘은 어렴풋 알았지만 정여사처럼 이토록 집요하게 이토록 늦은 시각에 그것을 실현시킬 생각까지는 하지 못하였다. 작은 아들과 딸은 숙연해진다. 정여사의 마음을, 엄마라는 사람의 마음을 우리가 따라갈 수는 없겠구나.


그렇게 정여사의 밤은 아픈 가운데 흘러간다. 자식이 아픈 것은 참으로 아프다. 그리고 엄마라는 사람들은 엄마라는 그 하나만으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언제나 길은 있다. 생각이 이르지 못할 뿐. 정여사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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