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사의 자존심 사수법:사랑해와 속상해를 상쇄시켜 줘. 나 속상해!!]
느닷없이 정여사가 정색을 한다. 항상 여유가 있는 분인데 정색할 일이 뭐가 있을까. 뭘 놓친 거지? 혼자 중얼거리며.
정여사 = 내가 평생 남에게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데..
전설=뭘?
정여사 = 남이 아니라 너네 아버지 살아 생전에도 엄마에게 그런 말 한 적이 없었는데.
전설 = (점점 더 오리무중)
정말 속상한 얼굴이시다. 이유를 알아 본다. 구식 2G 폴더폰을 사용하시다가 얼마 전에 삼성 A12로 바꾸었다. 그 연습이 거의 20일 째이다. 단지 전화를 거는 법과 받는 법을 배우는 중일 뿐인데 86세 정여사에게는 버거운 과정인 모양이었다. 배워도 2일 정도 사용 할 일이 없으면 잊어버리신다.
정여사에겐 살짝 터치 긴 터치 그리고 두번 터치 등이 아직 어렵다. 손 감각이 젊은이와 다르다. 그래서 순서를 제대로 기억을 해도 터치 자체가 부적절하니, 자기가 외운 순서가 틀런 걸로 오해를 해서 의기 소침해 지는 것이다. 본인으로서는 억울하고 속상한 일. 그런데 잘 기억하라고 한 마디 한 것이, 정여사에겐 충격 요법이 되어버린 상황.
= 정여사가 잘 습득을 못하고 잊어버리니 내가 많이 속상해요!!!
그 말이 정여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이었다. 86세 할머니에게 이런 세심하고 날카로운 자존심이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아니 잊어버리고 학습이 잘 안되어도 에라 모르겠다 하셔도 되는데 스스로 자책하는 마음을 아직도 가지고 계시나!!!!
= 하루에도 몇 번씩 와서 사랑한다 하는 말을 하는데... 사랑해 말을 안해도 되니, 속상해 라는 말도 하지 말아 줘. 서로 더하기 빼기로 해 줘. 나 속상해.
속상해하면서 동시에 사랑한다니 말이 안된다는 말이고, 속상하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면 사랑해라는 말을 듣기를 포기하겠다는 뜻이란다. 오 마이 갓. 정여사님!!!
정여사는 그렇게 자신의 자존심을 사수한다. 대단하신 정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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