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심는 회사: 토탈리콜]
아주 오래된 영화가 있다. 그때에도 SF에 적당한 관심이 있던 차에 본 영화가 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 작품에 나오는 한 장면이 각인되어 있는데, 그때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생각을 해도 [가능할까? 불가능할까?]의 답이 애매하다. 그러나 향후에는 어쩌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1990년에 개봉되었고 2012년에 리메이크되었는데 2012년 작품은 아직 보지 않았다.
제목인 [토탈리콜]에서 감을 잡을 수 있는데, 여러 가지 설정 중에 기억과 꿈과 현실을 정확하게 구분이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화성에 살게 된 인간들에게 산소를 무기로 하는 집단이 있어 발생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사람들이 반항하여 산소를 얻게 되는 소재의 이야기다. 주인공이 기억을 잃게 되어....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중의 하나는 [기억을 심는 회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산소부족으로 mutation이 된 여러 가지 mutants에 내가 문제의식을 가졌고 그 문제의식을 해결했다는 사실이다.
여행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이 회사를 찾았다. 뭐 이런 대화다.
= 어디로 여행하고자 하시나요?
= OOO입니다.
= 생각하고 계시는 여행 방법이 있나요? classic way? 혹은 new way?
클래식한 방법은 [실제로 여행을 몸소 하는 방법]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이고 새로운 방법은 [여행지의 기억을 심는 방법]이다. 뇌과학은 아직도 현실 체험과 기억과 꿈의 애매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30년 전에 벌써 그 차이를 이용한 여행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회사는 여행지와 여행지의 에피소드들을 합성해서 전기 자극으로 기억을 심는다. 그 기억을 회상하면 나는 그냥 여행을 다녀온 자가 되는 것이다. 굳이 몸을 써서 고생해서 여행지를 다닐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클래식 방법으로 여행을 가면 되는 것이다.
기억을 심어서 하는 여행이 가능하다면, 왜 영상물을 통해서 한 여행(영상물 관람)은 여행이 아닌 것일까. 어차피 뇌가 하는 여행이라는 점에서는 같은데 말이다. 몸이 개입되는 경험과 몸이 개입되지 않는 경험의 차이인데, 기억을 심은 행위는 몸이 개입된 기억을 심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는 수밖에 없다.
여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젊어서는 몸소 가능한 한 열심히 여행을 하고, 나중에 몸이 노쇠하여 여행을 할 수 없는 날에는 영상물로 여행을 해야겠구나 라고 늘 생각을 해왔다.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미래에는 HMD(head-mounted display)를 이용하여 3차원 입체 경험이 가능하지 싶다. 그러면 몸이 노쇠해도 클래식 여행의 경험이 쌓일 터이다.
3차원 입체 영상은 헬리캠이나 드론을 이용한 360도 방향을 다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다. 걸어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까지 즐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기억 심기]까지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는 세상에 살기는 어렵겠지만 신체 여행인 클래식 여행이 아닌 상황에서도 그런 효과를 누리는 여행의 경지까지는 경험하고 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해본다.
[플러스]
두 번째 기억의 하나는 [신체 변이자]에 대한 생각인데, 분명히 [정신 변이자]도 있을 것인데 영화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다. 토탈리콜에서도 그러하고 요즘 SF영화에서도 다루지 않는다. 왜?
제3의 손이 갑자기 등 뒤에서 튀어나와서 머리를 긁는다.
대화중에 갑자기 가슴 위치에서 그 안에서 제2의 머리가 나온다.
여자의 가슴이 중앙에 하나 더 달려있다.
영화를 보는 중에 매우 당황하였으나, 변이자가 많은 영화 속 세상에서는 놀랄 대상이 되지 않았다. 누구나 그런 변이를 자신 속에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이다. 자신이 아니면 가족 중에 친구 중에...
인간은 정신과 신체의 조합물이다. 정신도 인간으로서의 특징이 있고, 신체도 인간으로서의 특징이 있다. 그 모든 규정들이 시대적으로 정의되어 있음을 알았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머리가 꼭 하나이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팔이 꼭 2개일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가슴도 3개면 안 될 이유가 어디있는가?
지금도 그렇지 아니한가. 사고로 팔이 하나, 다리가 하나 없으면 인간이 아닌가?
인간을 규정하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기는 한데, 절대성을 지닐 것인가는 앞으로도 생각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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