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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DIPITY/DRAMAS & films

기억을 잃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노트북/첫 키스만 50번째

by 전설s 2021.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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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노트북/첫 키스만 50번째]

 

과거를 읽어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 [노트북](사진출처: pixabay)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 "너에게 묻는다"

 

태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백기완 작 "임을 위한 행진곡"

 

앞의 시와 뒤의 노래를 들을 때면 그리고 저 문장에 이르면 늘 가슴이 뜨끔 해진다. 쥐구멍을 찾고 싶어 진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상대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나를 뜨겁게 한 사람은 있는가. 그것은 천지에 물어보고 싶다. 

 

최루탄 속을 걸어가는 대오 속에서 흘러나온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나는 산 사람이었으니 그 선두를 따라갔는가. 아니면 나는 최루탄에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죽은 자였던가. 

 

여하한 저 두 문장은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서늘했다. 사랑이 있는 자. 살아있는 자. 당신은 어떤 상태인가.

 

 

까맣던 녀석이 붉게 타올라서 제 힘이 다하면 이렇게 재가 되었다. 무게는 또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사진은 pixabay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 드라마도 좋은 게 있었다.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도 정신 질환을 대하는 자세나 질환을 앓는 사람과의 사랑을 다루는 것이 적절했지만 최근의 [사이코지만 괜찮아]도 보기 드문 수작이 아닌가 생각했다. 질병이라고까지 하기엔 애매한 정신 관련 불편자(?)와 보통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다룬 것이니 얼마나 훌륭한 드라마인가.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볼까 싶은. 드라마는 한번 더 보기엔 너무 길어서 시간이 많이 드는 게 흠이다. 아무리 좋아도. 

 

기억을 잃은 사람을 사랑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 [노트북]에서는 젊어서 사랑에 빠지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고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치매로 진행된 아내와 그 여자의 남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치매이면서 늙기도 한 아내는 요양병원에서 사는데 남편이 늘 곁에 와있다 (마지막엔 남편도 몸이 불편하여 입원을 함께 했던가...). 그리고는 항상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자신을 남 대하듯이 하는 그녀에게 남편은 일기를 읽어준다. 그러면 그녀는 때로 그 내용에 감동도 질문도 하면서 둘은 노년의 잔잔한 사랑을 이어간다. 남편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 아내. 매일 새롭게 남편은 아내에게 반복되는 일을 한다. 인사를 하고 일기를 읽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오늘 우리가 나눈 대화를 내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대는? 

 

사랑했던 기억하나만으로 남자는 자신의 남은 생애도 그녀를 마저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나마 하나 희망적이었던 것은, 어쩌다가 몇 분간, 길어야 5분 정도 그녀는 남편을 기억하고 애틋한 사랑의 기억을 공유하고 현재의 슬픔을 나눈다. 남편은 그 몇 분이 영원의 시간이 된다. 사랑이 뭘까.  

 

그런가 하면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라는 영화는 노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고로 뇌의 기능 변화로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자신이 사고가 난 그 전날까지의 일만 기억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기억으로 저장이 되지 못하고 그 이튿날 아침은 다시 사고가 난 그날이 시작된다. 탐 크루즈가 주연인 영화 엣지 오브 투마로우를 보면 타임루프에 걸려 똑같은 날을 수백 번 사는 일을 다루고 있는데, 이영화는 타임루프나 다루는 SF 영화가 아니라 지극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루는 영화이다. 

 

매일 새로 만나는 그 남자와 이 여자는 천생연분일지도 모른다. 희한하게도 여자와 남자는 처음 만나는 그 날 늘 호감을 가지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물론 그 이튿날이면 그녀는 남이다. 처음 보는 남자가 되어 있다. 

 

매일 새로이 여자를 꼬셔야 (?)하는 남자의 고충은 무엇일까. 그래도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가족은 잊어라 한다. 사랑을 한다고 해서 더 이상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니 헤어지라고 한다. 물론 그 남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사랑의 힘이란 무엇일까. 궁하면 통한다고 일기를 읽어주는 저 노인처럼, 그래서 주어지는 몇 분간의 제정신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저 노인처럼, 이 젊은 남자도 아이디어를 낸다. 이 여자와 사랑을 오래 이어가는 법. 이 여자와 결혼해서 사는 법을 찾아낸다. 아이도 낳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법.  

 

여자가 아침에 눈을 뜨면 비디어 플레이어가 돌아간다.(옛 영화니까 비디오테이프를 돌리던 시절). 그녀의 사고 이후 어제까지의 굵직한 사건들이 비디오로 만들어져 있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현실을 파악한다. 기억이 하루는 가니까. (명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이 단기 기억 상실증 환자이고 그 증상이 어떠하다는 것은 인지하게 된다).

 

비디오를 통해서 우리는 그녀의 뇌가 된다. 아, 내가 결혼을 했구나, 아이가 있구나, 남편은 저 사람이구나. 등등. 

 

얼마나 사랑하면 이런 아이디어가 나올까. 

얼마나 사랑하면 사랑한 기억마저 없는 사람을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치매 아내를 둔 노인은 젊은 날의 사랑의 기억으로 살고, 젊은 남편은 어제 사랑한 기억으로 산다. 이들의 사랑은 주기만 하는 것임에도 이들은 사랑의 샘은 마를 날이 없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은 헌신이라고 했던가. 

사랑은 나를 태워 너를 따듯하게 감싸는 일이라 했던가.

기억이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정말 쉬워 보이지 않는데, 그들은 해 낸다. 존경스럽다. 

 

기억이 어쩌면 우리 정체성의 전부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기억이 없는 사람과의 교제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진출처: pixabay)

 

[플러스]

술을 먹으면 필름이 끊기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은 알지도 몰랐다. 아니 자신도 그 사실을 모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썸 타던 관계의 남녀가 여자는 감정이 깊어지면서 진도를 빼고 있는데, 술 1잔하면서 나눈 이야기를 까맣게 필름 끊긴 남자는 여자의 감정의 진도를 이해할 수 없다. 보폭을 맞출 수가 없다. 여자는  남자를 잊었다고 했다.

 

기억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없는 사람을 저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세상엔 신기하고 기이한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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