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트로트를 아느냐? 정여사의 트로트 사랑]
비공개구혼/정여사/트로트사랑/노래 리스트/노래가 있는 삶
친구들이 요즘은 트로트가 대세라고 한 지가 꽤 되었는데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어떤 노래가, 어떤 트로트 신동이 떴는지, 어떤 트렌드가 형성이 되었는지, 어떤 방송이 신설이 되었는지, 인기 있는 신인은 누군지, 신곡은 뭐가 있는지.
하. 나. 도. 모른다.
늘 몰랐던 것은 아니고 최근 일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동안 트로트를 알았던 이유는 바로 정여사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흥이 많은 그녀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최근 정여사가 트로트에 대한 사랑이 좀 식었던 결과로.
정여사가 아직 열정이 있던 날에는 가요무대를 빼놓지 않고 보았고 함께 보느라 아는 노래도 많았다. 주거지가 거실에서 자기만의 방으로 옮겨가기 가요무대를 보러 내가 가지를 않았고, 그녀는 건망증과 치매의 경계에서 정신을 챙기느라고 트로트에의 열정이 줄어 있었던 모양.
정여사가
젊었을 옛날에는 노래를 듣고 바로 외워서 불렀다.
세월이 좀 지나서는 적어서 외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따라 불렀다.
세월이 더 지나서는 신곡이 나오면 나에게 제목을 적어주면서 가사를 적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면 나는 돋보기를 끼지 않아도 보일 만큼 제법 큰 글씨로 적어 주었다. 아 이사오면서 버렸구나. 달력 한 장을 떼면 두 곡 정도 적을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정여사의 신곡발표라고 했는데 요즘은 신곡 발표를 하지 않으신 지가 1년은 넘은 것 같다. 요즘은 정신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가요무대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방송으로 노래의 흥을 지속하고 계신다. 요즘은 채널마다 트로트 대회가 한창이니 우리 정여사에겐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정말 세상에 장점만 있는 일이 없고 단점만 있는 일이 없다. 온 나라가 트롯트 열풍이라 질린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우리 정여사에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이런 환경이 아니었으면 나는 유튜브에서 트로트를 찾고 틀어주고 있었을 것인데.
그래서 하루는 여쭈어 보았다
"요즘은 왜 신곡 발표 안하십니까?. 가사 적어달래기가 귀찮아서?"
"아니, 이제 아는 곡만으로 살아볼라고..."
이 글을 적다가 문득 정여사가 노래 제목을 적던 수첩이 생각났다. 기념으로 가지고 있으려고 챙겨둔 것인데 지금 세어보니 수첩의 37장에 빼곡히 노래 제목이 적혀있다. 가사가 아니라 제목만으로 39장이다. 대단한 여성이다.
갑자기 정여사에게 뛰어가서 외친다.
"엄마 싸랑한다"
"집에 가서 곱씹어 보니 부아가 치민다는 말은 있는데, 부아가 치미는 분위기인데 사랑으로 바꿨네"
아직 유머가 있는 그녀.
트로트는 47세부터 혼자되어 자식 셋을 키우며 살아온 그녀의 인생 동반자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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