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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DIPITY/TRAVELS abroad

프라이버시 철저했던 기숙사

by 전설s 2021.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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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 철처했던 기숙사 친구들]

온갖 얼굴을 하고 있어도 무슨 옷을 입던 we are the world!!!!!!!(사진은 pixabay)

 

원룸 같은 기숙사로 옮긴 이후로 여러 나라 친구들을 더 가깝게 사귀었다. 전의 기숙사는 원룸 형식과 아파트 형식 그리고 진짜 원룸(부엌 없이 공동 키친을 사용하는) 형식의 여러 형태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공동 키친을 사용하는 원룸에서 살았었다. 남녀 구분이 없어서 막 섞여서 식당의 냉장고 가스 등등 모두 공동으로 사용했다. 그것도 나름 재미이었다. 샤워도 공동. 

 

 

그러다가 부엌도 있는 제대로 된 원룸의 기숙사로 이사를 했다. 여기는 여학생 전용이라 이것 저것 편리함들이 있었다. 세탁기와 세탁건조기는 지하에서 공동으로 사용을 했고 나머지는 각자 생활이 가능한 구조였다. 심지어 우리 기숙사는 작지만 앉을 수 있는 욕조마저 있는 멋진 곳이었다. 시내의 중앙에 있기도 해서 정말 좋았다. 

 

 

친구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영어라는 것이 나이를 생각하게 해주질 않으니 여러모로 편리했다 더구나 얼굴 마주 보고 대화하는 시간보다 MSN 메신저로 대화를 더 많이 나누었다. 모두 실험실에서 하루 종일 실험하다가, 문과반 친구들은 하루 종일 수업이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저녁이면 기숙사로 모이는 것이었다. 

 

 

피곤하니 쉬면서 저녁식사 준비하면서 먹어가면 TV 시청하면서 인터넷하면서 멀티 태스킹 와중에 MSN으로 잠깐잠깐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지금으로 치면 카톡을 하는 셈이었다. 하다가 답이 없으면 다른 일을 하나보다 하고 방해하지 않았다. 

 

 

가끔 복도에 서서 2-3명씩 대화를 하기도 하고, 자기 방문을 열어놓고 문 앞에서 서서 5-6명이 서서 대화를 한다. 아무도 우리방에 와서 대화를 하자고 하지 않는다. 각자의 저녁시간이 소중하고,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소중하면서도 또 한 방에 모여서 대화를 할 만큼 소중하지는 않은 그런 내용들이라 그러했다. 

 

 

친구들은 결코 다른 친구방의 문턱을 함부로 넘어서는 법이 없었다. 항상 문 밖에서 대화를 했고, 어떤 경우에는 발을 내 방으로 한 발 넣은 경우에도 손으로 문을 잡아서 결코 몸의 무게중심이 방으로 실리지 않게 했다. 꼭 들어와야 한다면 반드시 "May I come in?"으로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주중에는 절대로 may I come in을 남발하지 않았다. 각자 외국 유학생활이 만만치가 않았다. 할 일들이 많아서 서로 방해를 주지 않고자 노력했다. 

 

 

신기한 것은 중국 인도 베트남 필리핀 한국 등 아시아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고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서양 예의가 몸에 배어 있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랬고 다른 친구들도 프라이버시를 철저하게 존중했다. 서로서로. 

 

 

복도 대화를 가끔이지만 카톡대화는 장난 아니게 많이 했다. 그 때 벌써 단톡방도 있었고. MSN메시저 초기였을 때인데 우리의 온라인 대화를 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대학 자체가 인터넷을 충분히 보급하고 있었다. 각자의 방에서 인터넷으로 친구들과 우정을 쌓았다. 

 

 

그리고 우리 층에서는 가끔 포트럭 파티를 했다. 각자 자기 나라의 음식을 만들고, 자기와 친한 친구들 2-3인을 초대하여 먹고 마시고 대화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 나라 음식과 문화도 이야기 나누고. 

 

 

이렇게 해서 시진을 찍어 인화라도 하면 그 사진을 나누는데, 그 때도 결코 방문을 넘지 않는다. 사진만 주고 대화를 하다가 돌아간다. 자연스럽게 들어 올 수도 있는데 결코 그러지 않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매우 적합했다. 매일이 바쁜데, 가라고 할 필요도 없고 눈치 없이 앉아있을 이유도 없고. 볼 일만 보고, 중요한 대화는 온라인으로. 희한했지만 그때는 그것이 적합했다.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일, 상대의 시간을 내 수다로 낭비하지 않기등은 매우 소중한 가치였다.  

 

 

인도 친구 1명만 언제나 환영이었다. 그녀는 내방에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그녀 방에 허락 없이 들어가도 되는 사람이었다. 알게 모르게 서로 궁합이 맞았을까. 그리고 그녀는 친구가 많기도 했다. 그녀 때문에 결국 인도 여행을 가지 않았는가. 

 

 

여하한 개인 프라이버시라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이제 개념이 자리 잡았고 실천하기 시작했지만 몇 백 년의 역사를 지닌 서양인에 비해서는 아직 약하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 않았는가. 전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는데, 그래서인지 외국 생활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라는 개념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지만 개인 간에도 "개인 간의 거리"라는 것이 있다. 정신적인 것도 있고 육체적인 거리도 있다. 거리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여기에 프라이버시가 당연히 들어간다. 개인이라는 것은 여럿 가운데의 혼자라는 뜻이 아닌가. 적정거리 유지가 인간관계에 매우 중요한 것이 되고 그것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기초가 된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면서도 함께 화합의 시간을 가졌던 기숙사의 친구들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다들 각자의 나라에서 중한 일들을 해내고 있을 터이다. 그립고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기숙사 복도의 양쪽에 늘어 선 문이 열리고 친구들이 고개를 내밀고 소근거린다. 다들 저녁준비하면서 들락날락. 파티하는 날은 저 복도가 파티장이 된다. (사진은 pixaba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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