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보다 더 가벼울 수는 없다: a very simple Thought on heavy Topics
SERENDIPITY/MEDITATION & books

반야심경 현대어 변역을 이제야 본다(2014년 버전)

by 전설s 2022. 7. 14.
반응형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본을 이제야 본다 (2014년 버전)]

2014년 오유의 번역복 버전(정확한 출처모름. 연락주시압)



친구들 단체 카톡방에 반야심경 현대어판이 올라왔다. 출처를 찾아보니 도무지 없다. 어디선가 나와서 몇 년을 돌아다니는데 명확한 출처를 찾지 못했다. 다만, 2014년 오늘의 유며라는 곳에 소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토록 많이 인용이 되었는데도 별일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굳이 자신이 번역자임을 밝히지는 않을 분이라는 정도의 결론.

 


260자라는 글에 [대승불교 반야 사상의 핵심]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마하반야 바라밀다 심경의 약자로서, 온갖 분별이 끊겨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지혜의 완성을 설한 경이라고 한다. (네이버). 분별이란 무엇일까만 떼와서 생각을 해 본다.


분별이라는 것은 바로 나의 인식의 틀(프레임)이 아니겠는가.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내재된 인식의 프레임에 입각하여 분별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 재된 인식의 틀은 출생과 동시에 부모에 의한 교육과 사회와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교육의 가치에 따라 정립되기 시작한다. 희한하게도 같은 내용을 가르쳐도 모든 인간은 달리 해석하여 자신의 프레임을 가진다. 공통적인 것이 있는 반면에 가정에서의 사적 교육에 의해 그 프레임은 다양성을 지닌다.


그 인식의 프레임속에서 인간은 행복하게 살기도 하고 불행하게 살기도 하는데, 행복과 불행의 단초가 되는 인식의 작용과 인식의 대상에 대한 물상의 허망함을 이 경전은 말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배운 인식의 틀은 분별심으로 연결이 되고, 세상과 조화롭지 못한 나의 분별심은 행복과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영화 스크린을 보는 마음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견지할 수 있어서 각 에피소드를 받아들이는 판단은 의미가 있고 근거가 있다. 대하드라마나 대하소설을 사랑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나의 틀]로만 파악하는 실수를 덜 하게 되기 때문이다. 동서남북 상하좌우 모든 사람의 관점을 다 접하고 난 뒤에 [어떤 의견이나 판단]을 내리게 하게 한다. 그래서 그 판단은 훨씬 풍요롭고 덜 괴롭다.


삶은 영화와 같다. 흐름속에 뛰어들어 사는 것이다. 필름은 끊임없이 돌아간다. 한 순간에 머물 이유가 없고 그 흐름을 타면 된다. 한 순간에 일어나는 마음속의 인식/상념/기억들은 전체성의 한 단면이다.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어서 어서 흘러가게 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갇힐까. 나 자신의 인식 프레임이 한정되어 있어서이다. 매사를 그 틀에 마추다보니 맞지 않는 일들이 나를 괴롭히게 된다. 프레임(인식의 틀)을 무한히 많이 소유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 방식을 추구한다. 독서를 하고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이다. 깨달은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인식의 프레임을 많이 만드는 방법보다 그[인식의 프레임] 자체를 허물어 버린다. 왜냐? 인식의 대상이 허상임을 간파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살아 생전에 인식의 프레임을 많이 만들고, 더 크게 만들고 더 깊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며 살면 된다. 독서 여행 대화 분석적 드라마 보기, 더 나아가고 싶으면 깨달은 사람이 되면 된다. 인식의 프레임을 아예 가지지 않는다는 사람들. 흘러갈 대상들이라서, 내 인식의 프레임으로 파악한 실상으로 오해한, 그 허상이 내 인식의 대상임을 알기에.


깨닫는 자가 되는 방법이 있을까. 있을게다. 분별심을 버리면 되는 일인데, 그 분별심이 때로는 나 자신의 정체성을 준다는 이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의문의 덩어리인 분별심인, 인식 프레임의 종류와 개수와 넓이와 깊이를 축적해 가다 보면 어느 날 그 모든 경계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 상태가 분별심이 없는 상태, 각성의 상태가 아닐까. 그리고 누구 말처럼 반야심경의 현대어 버전이라도 매일 되뇌면 깨닫는 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친구가 올린 [반야심경 현대어 버전]. 참으로 오랜만에 불교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불자도 아닌데. 종교인도 아닌데. 불자도 종교인도 아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이고 그런 것들을 다루고 있기에 남의 일은 아닌 게 아닌가. 오늘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