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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이 포도청: 생존 vs 가치

by 전설s 2021.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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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이 포도청: 생존 vs 가치]



당신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시는가? 어떨 때 사용하시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은 [정의와 가치를 지켜야 하는 순간에 그것을 지킬 수 없던 순간의 이유]를 대변하는 말인데 뜻은 [생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목숨을 특히 내 목숨 혹은 내 가족의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면 평소와 달라 별나고 특이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전제가 깔린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기초가 되는 것은 목숨, 즉 생명 그 차체가 있어야 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논쟁적인 평행을 달리다가도 이 지점에 이르면 논쟁은 힘을 잃는다. 나도 별수 없는 평범한 사람을 인식하는 순간이라 낭패감 (더 뼈아프게 패배감)이 있을 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얼마 전의 대화중에도 생존이 걸린 문제라면 평소와 다른 결정을 내려도 수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지인과 대화를 했다.


생존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생존이 있어야 다음에 삶도 있고 가치도 있고 뭔가 논할 것이 있어지니 생존할 수 없다면 그다음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생존을 던지면서도 포기하면서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우리 같은 범인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럴 수는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역사에 그런 인물들이 현존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를 외치던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었고, 고려를 버릴수 없다면서 죽어간 사육신이 있고, 예수를 믿는다고 죽어 간 수많은 영혼들이 역사에 버젓이 있다. 그들에게는 생존이 중요하지 않았겠는가.


생존을 주장한다고해서 그들은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양자택일의 순간에는 생존을 우위에 두겠다는 뜻일 뿐이다. 가치 우선자는 늘 자신의 가치대로 살려고 할 것이다. 생존 우선자도 늘 자신의 가치대로 살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두 그룹이 같아 보인다. 생존 우선자도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만 오지 않는다면...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만 없으면 삶은 아름답다. 극도의 생존의 위협이 자주 오주 않게 하면 모두가 평화롭다.


평화위 시기에는 생존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 전쟁이 나 혁명 등의 극도의 긴장된 상태가 아니면,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을 각자가 임의로 정할 수 있다. 그것이 다른 가치의 추구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평화의 시기에도 곤경에 처했을 때도 항상 같은 가치와 잣대로 임하는 사람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가치와 잣대가 유사한 사람을 갈구한다. 일단 가치와 잣대가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다음엔 생존과 가치의 선택이 주어졌을 때 동일한 것을 고를 만한 사람을 스스로 평가해 두어야 한다.


그런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고마운 것은 적어도 나의 인생에는 그것을 골라야 할 정도로 극단으로 치닫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은 나 자신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 상황에 놓이지 않았으니. 그러나 사고 실험을 해두면 조금은 덜 당황하고 덜 낭패스러운 가운데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사고 실험은 해둘까 한다.

나아가라. 생존이냐 가치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진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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