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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두려움의 대상이 있다: 2가지 두려움 극복기

by 전설s 2021.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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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두려움의 대상이 있다: 4가지 두려움 극복기]

지렁이 사진중에 가장 무난한 것으로 골랐으나 여전히 정겹지 않다. (사진은 pixabay)

지금은 세상을 좀 살아서 두려움이 굳이 없다. 없다고 하니 그럴 리가 없다면서 죽음이 두렵지 않으냐고 강권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질병이 두렵지 않으냐고 그것도 강권하였으나 아직 수긍하지 않고 있다. 생로병사. 네 가지에 대하여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던 것 같기는 하다.


친구가 자신의 두려움을 4가지(어둠/유령/남들앞에 나서기/고소공포증)로 말하는 것을 듣고 문득 전설도 두려움의 대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지금은 없지만 그때는 분명히 선명하게 있었고 실제로 큰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대상이 무려 4가지나 있었다.


지렁이를 무서워했다.
개를 무서워했다.
두 가지가 더 있는데, 19금이라 공개적으로 적을 수는 없다. 다음 기회에.


요즘은 도로 정비가 되어 덜하지만 예전엔 비만 오면 걸어 다니는 길에 지렁이의 출몰이 상당히 많았다. 요즘도 공원 내에서는 지렁이의 출몰을 많이 본다. 주택에 살 때에는 집 근처에 도랑이 있어서 지렁이는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보는 동물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지렁이에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징그럽고 보기만 해도 내 몸으로 쳐들어 올 듯하여 공포감이 엄습했다. 어쩌나 서로 잘못하여 밟히거나 밟는 날은 참으로 처참한 경험이 되는 것이었다. 소름 끼치는.


지렁이가 위협을 가할리도 없고 위협을 가한다고 해도 줄행랑을 치면 맞닿을 일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공포감을 주는 일은 계속되었기에 어느 날 결단을 했다. 왕소금을 한 움큼 쥐고서 생사를 나누었다. 나는 살고 지렁이는 죽었다. 참으로 잔인했다. 내가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 이후에 미물이라도 그 생명을 아끼는 노력을 하였으나 그 잔인했던 날을 잊을 수는 없다. 다만. 지렁이에 대한 공포는 없어졌다.


개를 매우 무서워했다. 개가 보이기만 하면 이미 몸이 얼어붙었다. 그때는 개를 풀어 키우는 집도 많았고 작은 개는 무시로 만날 수 있는 때이니 얼마나 무서웠겠나.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개를 키운 적도 있는데, 직접 키운 그 강아지 말고는 전부 무서워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의 마음을 모르겠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 공격해 올 지도 모르겠고.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줄행랑을 쳐도 개에게 질 것 같은 생각이 결론으로 나자, 개는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다. 일단 개의 마음을 몰라서. 그때는 아주 가끔이지만 광견이라고 한 번씩 마음에 출몰한 적도 있었다. 광견이 아니라 판명이 나기도 했고, 뭘 모르던 우리들이 사나운 개를 광견이라 부르기도 했고.


개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개가 보이거나 개소리가 들리면 벌써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나는 너에게 악의가 전혀 없다. 너의 마음은 알 수 없으나 나는 너의 곁을 조용히 지나가겠다. 그러니 너도 조용히 지나가라. 다시 말하지만 나는 너에게 악의가 없다". 이 말을 되뇌면서 두려운 마음을 누르고 매우 무심한 눈으로 개를 지나갔다. 가방은 앞으로 나를 보호하면서. 그 일을 반복하면서 점점 대에 대한 두려움과 이별하였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그랬고, 이후에는 사람들이 개 줄을 사용하여서 좀 편해지기도 했다. 개가 무서울 때는 나의 행동이 이상하니까 개도 긴장을 했고 개가 긴장하니 나는 적의를 느꼈고 악의 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시절.


개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인간은 적개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대화를 하면 되는데 개와는 그 대화를 할 수 없으니 더더욱 마음을 모르겠는게 문제였다. 지렁이도 그렇고 개도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 항상 그 전제였다. 그리고 줄행랑을 쳐도 잡힐 것이라는 것이 겹쳐서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이었는데... 다른 동물들에게는 느끼지 않는데 왜 유독 이들이었을까? 개와의 대화라니. 개의 마음을 알려고 했다니. 지렁이가 나를 어떻게 공격을 하겠냐고. 모든 이성적 해석을 동원해도 되지 않더니 스스로 마련한 두 가지 솔류션으로 나름 해결을 했다. 무심한 마음으로 행동이 경직되지 않으니 개들도 경계를 풀었다. 선순환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그때는 몰랐는데 명리학을 공부를 조금 해보니 수긍가는 측면이 생겼다. 개의 속성과 지렁이류의 속성. 그리고 내게 주어진 우주적 기운들의 충돌 혹은 기운들끼리의 교류가 저런 현상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었겠다 하는 피상적 이해가 왔다. 좀 더 공부를 해보면 더 재미난 일들도 해석이 될지도 모르겠다. 포인트는 개와 지렁이를 무서워 한 이유를 정확하게 몰랐는데 이제 어렴풋이 알겠다는 것이다. 개와 대화가 안되어 무서웠다니. 지렁이가 쫓아올까 봐 무서웠다니. 본인이 그때 분석한 이유가 참으로 웃기지만 어쩌겠는가. 그때는 그러했다. 오래전 그때는 그렇게 이해를 했더랬다. 우주가 그 기운으로 지구를 덮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플러스]
지금도 개를 매우 좋아하지는 않는다. 일단 경계한다. 개를 키우는 집에는 잘 가지 않는다. 불편하고 싶지가 않아서이다. 길거리를 가다가 만나는 개에게 다정하게 가서 손으로 만지는 친구들이 참으로 신기하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면서 개에 대하여 공부를 아주 많이 했다. 개도 인간처럼 궁합이 맞는 인간을 만나야 순탄하게 개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그렇다 해도 결코 편하지 않다.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그 옛날 나를 "얼음 땡"하게 만들었던 개의 이미지. (사진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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