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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조사 담당입니다. 앞으로도

전설s 2024. 9. 2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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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조사 담당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뜻밖에도 경조사에서 많은 친척들을 만난다. 소원하였던 사람들도 그날은 만난다. 조문시간이 짧을수록 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이게 되어 오랜만에 그 얼굴을 보게 된다. 망자에
게는 명복을 빌지만, 산 자들은 오랜만의 반가움이 있다. 
 
엄마 아버지는 형제가 많았다. 7남매 8남매. 아버지는 막내셨고, 엄마는 동생이 한 명 있으니, 두 분 다 거의 막내라 볼 수 있다. 엄마는 외가 남매 중에 제일 오래 사셨다. 향년 만 88세. 친가 쪽의 며느리로서도 제일 오래 살아주셨다. 
 
오빠들이 서울로 출가를 하는 바람에, 고향에는 우리 정여사와 나만 남았다. 오빠들은 상이 나면 연차를 내고 왔지만, 결혼식에는 늘 엄마와 내가 참여를 했다. 서울 경기의 외가 쪽 경조사는 오빠들이 담당을 했고, 고향의 경조사에는 우리가 참여했다. 은퇴를 하고 나서는 가능한 한 집안일에 오빠가 참여를 하지만, 직장을 다닐 때는 그게 어렵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양해를 했었기에, 친척들은 우리 정여사와 내가 참석하는 것으로 다 참석을 한 것으로 여겼다. 
 

 


15명의 형제 자매와 그 배우자들. 30명이 이제 다 돌아가셨는데, 조문을 거의 다 했었다. 그런데 이제 사촌들이 아버지 나이부터 시작하여 내가 막내이다보니, 사촌들의 사망이 시작되었다. 오래되었다. 제일 큰 사촌 언니는 아버지보다 한 살이 많았다. 사촌들도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이 꽤 많다. 15 부부의 자녀들이 제법 많다. 
 
문득, 부모님 세데들은 다 가셨고, 우리 세대의 사촌들도 많이 가시니... 문득, 문득, 나의 장례식에는 올 사람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3촌 조카들이 내 장례를 치르겠지만, 5촌(사촌들의 자식들)들이 나의 사망에 명복을 빌 시간과 여유가 될까. 
 

 

 

부모세대들의 장례,
그 자식들인 우리 세대의 경사(결혼)
그 모든 과정에 막내인 우리 정여사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 정여사와 거의 동행했다.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 제사와
일찍 돌아가신 백부들의 제사까지, 우리 정여사는 해마다 나에게 새 달력에 표시하게 하고 참석하셨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동행했다. 
또한, 
설날과 추석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큰 집 제사를 갔다. 그토록 오랜 세월.
 
그 시간들이 좋았다. 
 
그래서 양쪽 집안의 모든 친척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토록 오랜 세월 그토록 성실하게 참여를 했으니, 정도 많이 쌓였다. 그래서 남은 날들에도 사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놓치지 않고 계속 마무리를 잘하기로 마음먹는다. 
 

 
 
 
우리 정여사가 75세쯤 되었을 데, 정여사가 몸이 불편하자, 내가 우리 집 제사와 차례를 준비할 때는, 설과 추석 차례는 참석을  하지 않았다. 
 
공수래공수거.별 미련도 없지만, 오늘 조문 가기 전에 생각을 모아보니, 나의 장례식에는 참석할 사람들이 없겠다 하는 결론이 난다. 3촌들이 잘 정리를 해 주기만 바라면 되겠다. 남아있는 사람들과 더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기회를 가지는 것으로 하자. 남은 사촌들의 마지막 길에는 배웅을 꼭 하자.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공수래공수거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면 된다. 재물이나 명예에만 욕심이 있겠는가. 인간관계에도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다. 장례에서 누가 슬퍼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욕심이다. 사촌 중 가장 젊으니 가장 늦게 하늘나라로 갈 확률이 높으니, 갈 때도 혼자 갈 확률이 현저히 높다. 이론적으로만... 본인이 갈 때는 그야말로 다 부질없다.

더 마음 편하게 살다 가도록 하자. 올 때처럼 꼭 빈 손이 되어서 가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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