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찍은 기념사진이 드물다: 등장인물이 없는 사진]
사진작가에게 물었다.
= 여행을 가서 사진을 많이 찍게 되는데, 특별한 팁이 있을까요?
= 사실 여행지 자체의 사진은 전문가가 찍어 놓은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굳이 힘들여 찍을 이유가 없고요.
= 아 그럴수도. 인물 사진은 어떤가요?
= 인물 사진 특히 현지인을 포함한 사진을 찍을 경우에는, 그들과 친구가 되어야 좋은 사진이 나옵니다.
역시 전문 사진 작가의 답이다. 저런 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구도를 어떻게 잡으면 쉽다든지, 해가 있을 경우와 없을 경우라든지, 핸드폰 카메라뿐인데 큰 건물은 어떻게 담을 것인지, 인물사진이면 인물을 사진의 어디쯤에 들어가게 하면 구도가 좋다든지, 혹은 인물의 얼굴이나 몸 각도를 이렇게 하면 무난한 사진을 건질 수 있다든지.
그런 실질적인 조언이 아니라 정말 프로다운 조언을 한 셈이었다. 우문현답이 되는 건가.
여행을 늘 혼자 다녔다고 말해야 한다. 왜 혼자 다녔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해야 한다. 여행을 함께 다닐 여건을 갖춘 사람/가족/친구/동료/애인을 만나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장기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외국처럼 연 4주씩 연차가 주어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주어지고 있기는 하나 그렇게 장기적으로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덜 되어 있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었으나 풍경과 건물등을 찍었다. 다시 말하면 본인의 얼굴이나 몸이 들어간 사진이 별로 없다. 외지에서 모른 사람에게 카메라를 넘기며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 불편했다. 아니 그보다는 다른 사람의 여행을 방해하는 행위였다. 자기 일행이라도 방해가 되는데 다른 나라 사람에게 그런 불편을 끼칠 수가 없다는 것이 한 이유이다. 또 하나는, 여행지를 즐기는 방법이 여러 가지 일 것인데, 전설의 즐기는 여행에서 사진은 들어 있지 않았다. 본인이 그 사진 속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굳이 없었다. 사실 사진도 정성 들여 찍지 않은 것이, 사진 찍은 시간만큼 즐기고 감상하고 기억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적으려니, 이제는 어디를 가건 한 장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말 어쩌다가 부탁해서 전설이 들어 간 사진은, 나중에 보면 마음에 드는 경우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런데 2017년에 남미 5개국 여행을 갔을 때 만난 한 동행인이 가는 곳마다 사진을 도맡아 자신의 핸드폰으로 찍는 수고를 해 주었다.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자신은 셀카봉을 들고 와서 다 찍고, 시간을 내어 또 전설의 사진을 찍어 주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폰에 찍어서 전설에게도 전달을 해 주는 것이었다. 훌륭하고 고마운 사람을 만난 것이다.
이 동행인이 보내 준 사진은 워낙 많이 촬영하여 구도가 맘에 드는 것이 많았다. 남이 찍어서 맘에 드는 경우가 정말 드물었는데, 사진을 담는 모습이 유사한 것이었을까. 여행 오기 전에 젊은 애인을 사귀었는데 사진을 초당 찍다시피하여 몸에 배여서 그렇다고 너무 고마워하지는 말아란다. 10분지 1도 안된다면서. 그래도 그 고마움은 잊을 수 없다.
처음 만난 이 동행인이 찍어 준 사진이 생각지도 않게 맘에 드는 구도였고 표정이었다. 프로 사진 작가가 말한 "인물 사진에 나오는 사람과 친구가 되면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는 저 조언이 실감이 나는 순간인 것이다. 그 친구와 전설과 나름 편한 구석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편한 표정이 나온 것이고, 그래서 결국 자연스러운 사진을 갖게 된 것이었다.
사진은 기술만으로 찍는 것이 아니다. 찍고자 하는 인물이나 건물이나 자연풍광등 피사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더구나 대상이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 내가 친구일 때 한층 더 자연스러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훌륭하지 않아도 된다. 코끼리를 다 담을 수는 없고, 코만 담아와도, 왼발만 담아와도, 그 사진을 보면서 전체 코끼리를 회상하는 나의 뇌가 있으니까. 나의 기억이 있으니까. 혹은 코끼리를 인터넷에서 찾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적당한 시간에 자기 마음대로 한 컷 하면 이미 충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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